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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green Aug 06. 2022

2022년 8월

우리집 두 아이

예전  중학교 근무하던 시절,

한 학생이 이런말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 저희 엄마는요.

제가  말 안듣고 속섞일때마다

베넷저고리를 꺼내서 말없이 빨래를 한대요.

그럼 이렇게 작고 귀여웠던 저를 떠올리며

서운했던 마음을 삭히신대요."


그때는 우습다고 같이 웃었는데

그 학부모님이 현자셨구나.


나는 대신에

아이들이 어릴때 했던

우습고 귀여운 말과

감동적인 말 들을 곱씹어본다.



#01.

첫째아이가 다섯살, 둘째가 두살 즈음

결혼기념일에 남편과 투닥거리게 되었다.


당연히 근사한 곳에서의 외식은 고사하고

화가 나서 두 아이 데리고

고작 간 곳은 보리밥 뷔페ㅋㅋ


식구들 입맛이 전부 토속적이라

보리밥 두그릇 슥슥 비벼

큰아이는 혼자서 밥을 먹고

나는 둘째를 챙기며 밥을 먹는데


첫째 딸아이가 말을 건넨다.

"엄마, 있잖아."

"응.왜?"

"엄마는 아빠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나보는 게 어때?

아빠는 좀 별로인것 같아.

아빠말고 다른 남자좀 만나봐"


싸우고 나와 기분이 안좋았는데

딸 아이의 말에 한참을 웃어댔다.

결국 남편에게 이 내용을 전하고

남편과 까페에서 합류해 화해했다는 이야기.



#02.

둘째아이가 다섯 살 즈음,


"엄마.아기는 어떻게 생겨?"

"아..음...아빠랑 엄마랑..음.."

"뭐해야 아기가 생겨?"

"아..음...아빠가 아기씨를 주면 되."

"어떻게 줘야해?손으로 주면 되?"

"어..그래. 손으로 주면 되..(하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댁 식구들 다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서

둘째가 밥상에서 졸라댄다.


"아빠~나도 동생 아기 갖고 싶어.

아기씨 엄마한테 줘

지금 엄마한테 줘~~~~~지금 주라고오!!!!!"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동네에서

시부모님은 헛기침을 하시고

시누만 깔깔 대던 그날 저녁.




#03.

친가와 외가의 온도 차이에 항상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외할머니는 엄마의 새 엄마라서

친할머니만큼 너희에게 그렇게 애정을 표현하시지 않는거라고,


그래도 너희들을 예뻐는 하시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했다.


당연 우리 아이들을 끔찍이 위하는 시댁으로

더 자주 찾아뵙게 되었고


외갓집은 일년에 한 두번 정도

잠시 들르는 곳이 되었다.


나또한 친정에 전화를 드리지도 않는데


둘째아이가 여덟살, 외할아버지께 전화를 건다.

"이야, 엄마도 외할아버지한테 전화 안하는데

우리 @@  멋지다!!"

"왜 전화를 안해?"

"그냥..음...모르겠네."

"엄마, 그래도 아빠잖아. 엄마의 아빤데 왜 전화를 안해?"


아이쿠,

그러게.나의 아빠인데 왜 전화를 안 했을까..?


아이의 저 한마디에

그 순간

서운한것도 너무 담아두지 말고

때로는 나사 한 두개정도 빠진 척

좀 가볍게 살았어도 됐는데 싶었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나의 지나친 무거움,진지함이 환기될 때가 많다.


요즈음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두 아이가 가끔 돌덩이를 얹어줘서

더 무거울때도 있지마는


그래도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님께서 주신 천사가 아닐까 싶다.



오전에도 사실 투닥거렸지만

베넷저고리를 빨아대던 학부모님처럼

아이들 낮잠 자는 시간에

과거 일을 곱씹어보니 사랑이 다시 채워진다.


깨면 덜 혼내야지.

또 다짐해본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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