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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green
Aug 06. 2022
나는 나를 활활 태워야
되려 살아갈 의지가 생겨난다.
오롯이 날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고
그렇게 한다해도 그리 행복하지 않다.
자존감이 낮은건가?
오지라퍼 성격때문인지
타인을 위해 웃고 울고
그들을 행복하게 해 줄때에 나도 행복하다.
인정욕구때문인가?
뭐 어딘가는 결핍이 있어서
이런 성격이 되었겠지만
38년 살며 굳어진 이 내 성격을
극적으로 바꿀수도 없으며
항상 선 한길로 한발 한발 나아가 디딜수 밖에 없다.
이것이 나의 결론.
어쨋건
대학교 3학년때,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몸까지 많이 병들어 있던 때에
홀로 버스타고 찾아간
xxxx영아원.
조그만 아기들이
칸칸이 침대에서 난간을 잡고 서
울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으면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한 봉사자 주변에 아기들 다서 여섯이 둘러앉아
한 숟가락으로 요플레를 받아먹다
더 달라고 눈물콧물 다 흘려가며
내 팔에 안기던 그 모습들이
왜그리 슬펐던지
나는 그곳에서 내 남은 생을 결단했다.
"나는 꼭 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그 뒤로 학교 기간제교사로 취업하게되면서
몇번 더 기저귀와 분유로 봉사를 다니다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하얗게,
정말 하얗게 잊고 살았었다.
그러다 교회의 제자 훈련기간동안
다시 그곳 아이들이 생각이 났고
10년만에 전화를 걸었다.
침대 난간을 붙잡고
나를 바라보던 아이들 중
얼굴이 유독 뽀얗던 아이는 입양을 가서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벅차오르고
후원방법에 관해 문의를 드리다
지정후원금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다.
월 얼마씩 아이의 개인통장으로 입금이되며
이 돈은 아이가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어
시설을 나가야 할 때
유용하게 쓰인다며 설명을 해주시는데
'바로 이거다!' 마음이 벅차 오른다.
바로 한 아이의 후원을 신청했다.
며칠 후 아이의 인적정보가 도착을 했고
그 방에 같은 나이의 아이가 하나가 더 있다는 글귀를 보고는
또 오지랖이 발동했다.
'왜 나만 후원자가 없을까, 왜 쟤만 있지?'
라는 생각을 하면 어쩌나 싶어
다시 연락을 드려
그 친구도 같이 후원 신청을 했다.
내 용돈이 훅훅 빠지는 소리에
마음이 조금은 쓰리지만
그래도 두 아이가 든든하다면야
이 아지매 커피좀 덜마시면 되지 싶어
마음이 붕붕, 행복하다.
그러다 제자훈련 막바지,
갑자기 큐티를 하고 기도를 하는데
시설 모든 아이들에게 치킨파티를 시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마구마구 생기는게 아닌가,
부원장님께 치킨비용 대략 얼마가 드냐 여쭤보니
남편몰래 모은 용돈이랑 정확히 일치!!
하아,
이돈을 다 보내면
나는 눈썹문신도 다음달에 해야하고,
마라탕도 덜 사먹게 될텐데.
참으로 오랫만에 깊은 고민에 빠졌지만
결론은 무엇?
쿨하게 그 돈을 다 보내고
조금 남은 미련은 애써 잊고 살던 어느 날,
과외수업을 하다 잠시 쉬는 시간에
카톡으로 스무장 남짓한 사진이 도착한다.
사진을 보고 입은 웃는데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학생들이 묻는다.
"쌤, 왜요?"
"아니야, 너어어무 행복해서ㅠㅠㅠㅠ"
50명 되는 초등학생, 중,고등학생이
한손에 치킨을 들고
브이를 하며 활짝 웃고 있다.
아, 미치겠다.
너무 행복하다.
나 한 5년은 이 힘으로 더 살 수 있을것만 같다.
시설 원장님까지 전화가 왔다.
"요즘 코로나로 아이들이 많이 울적해 있었는데
누군가 자기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모처럼 행복해 했습니다.
그런 아이들 보니 저희들도 너무 행복해서
전화를 드려요."
"아니에요,정말 아니에요.
제가 오히려 받은게 더 큰걸요,
저, 정말 더 많이 받았어요.
원장님, 감사해요!!!"
그 길로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왼손이 한 일 오른손이 모르게 하랬지만
가족에게 신이나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또 여기다 글을 쓴다.ㅎㅎ
여기까지 22년 7월 기록이고
앞으로 이 시설과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하며 고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