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을 적에 주고 싶어서."
아이들 아침밥을 차려주고 습관처럼 안마의자에 드러누워 폰을 보고 있는데
일년에 몇번이나 통화를 할까, 친정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거, 통장에 돈을 보냈거든.
할매가 오늘 이서방 생일이라고 돈을 보냈네."
통화를 하면서 은행 앱을 켜 확인을 해 보니, 큰 금액이 들어와 있다.
"헤- 돈을 그만큼 많이 보냈다고?왜요?"
"몰라. 할매가 보내고 싶으시다네."
바로 할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할매!!!! 돈이 어디 있어서 이렇게 보내!!!"
"아니라, 야이. 오늘 이서방 생일이라서 좀 쓰고, 남은건 aa.bb.공부 할때 큰돈드는데 거기다 써. 잉?"
"할매. 나 돈 번다고. 근데 이걸 왜 보내..."
"아니, 내가 살았을 적에 주고 싶어서..."
나는 불안장애 환자다.
그 한마디에 불안이 다시 도진다.
오늘 안가면 안 될것 같아서
우리집 아이들은 집에 두고 차키와 지갑을 챙겨 무작정 나갔다.
우리를 키우실 적에
새벽마다 나가 과수원 농장에서 일을 하시고
흠 있는 과일만 잔뜩 얻어다 드신 할매가 생각나
신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과일 가게에 들러
무작정 좋은 과일을 담아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우리가 새엄마와 함께 살면서
주말마다 할매집에 갈때면
빠알간 돼지 양념고기를 구워 주셨던 모습이 생각나
농협에 빠알간 양념 한돈고기를 장바구니에 담고,
마알간 갈비탕을 사드렸을 때,
"나는 빠알간 선지국 같은 국물이 좋아여." 하신 말씀이 떠올라
동네 가장 맛있는 식육식당의 점심특선 소고기국을 두 팩 담아
차에 시동을 켰다.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으니 40분이다.
뭐야, 이렇게 가까웠는데 나는 왜 그동안 자주 찾아가지 못했을까.
연세드신 어른이 그냥 할 수도 있는 말이
오늘 내게 굉장히 크게 와 닫는다.
동네 초입에
나름 어른들이 북적이던 슈퍼였던 곳이
인구가 줄어드니 돌 조각 하시는 분이 들어와 살며
조각해 놓은 부처 상과 이상한 요괴들이 반긴다.
바리바리 품에 안고 집에 들어서자
할매가 놀란다.
"야이, 누구라! 이젠 누군지도 몰라 보겠다!"
"할매! 나잖아!!!!"
"아이, 이쿠 돈 쓰이게 하고 난 참 못살겠다, 야이."
하나 하나 장을 봐 온것을 꺼내놓고 냉장고에 넣으려 냉장고 문을 열으니
여전히,
무엇하나 먹을 게 하나도 없다.
도대체 무얼 해 드시고 살았던 걸까.
나는 여기서 아이들과 함께 너무나 잘 먹고 잘 사는데
나의 행복이 너무나 미안해진다.
"야이, 같이 점심 먹을래?"
"할매, 내가 아직 코로나 안 걸려서 마스크를 멋으면 안돼여."
변명이다.
함께 둘이 앉아 밥을 먹을 생각을 하면
그냥 눈물이 툭 하고 터질 것 같아
시기 적절한 코로나 핑계를 대며
마스크를 쓰고 있다.
"야이, 나는 요새 참 지겹다. 사는게.
심심하고 뭐가 그렇다, 야이.
내가 죽고 나면 뭐 줄게 있겠나.
살아 있을 적에 주고 싶어서 그냥 줬지. 이제 뭐 줄 것도 없어.
그냥 살아 있을 적에 쪼매 주고 싶어서 그런기라."
시력이 나쁜 할매라 다행이다.
앞에서 눈물 질질 흘리고 있었는데, 우리 할매. 못 봤겠지?
"야이. 저 방에 가 봐.
니 애비가 니 오면 주라고 갖다놓은게 있는데 쓸만한게 있으면 가져가 봐."
생모가 억지 부려 사다놓은 피아노 위에
이불이 잔뜩 쌓여져 있고
그 밑에 아빠가 나 오면 가져가라고 쌓아둔 물건들이 보인다.
종이 각에 담겨진 새 수건들,
화려해 보이는 금 수저 세트,
어디 모임에서 받은 걸
좋아보이는 물건들이 있으면
내게 직접 연락하지도 못하고
그저 할매집 골방에 쌓아 둔다.
언젠간 내가 와서 가져가기를 바라면서,
찬장에는
엄마가 떠나던 해,
피아노 연주회를 했던
참빛 피아노 학원 단체 사진이 보인다.
일곱살짜리 여자 아이가 어두운 얼굴로 꽃다발을 들고 사진에 있다.
마음이 힘들다.
밥도 같이 안 먹을거면
차 운전 신경쓰인다고 얼러 가라는 할매의 등살에 못이겨
용돈 봉투를 쥐어 드리고 차에 올랐다.
"할매, 나 간데이~ 추석때 올게!"
마스크를 쓰지 않은 할매의 표정이 온전히 보인다.
우신다.
손에는 내가 준 돈봉투를 꼭 쥐고 우신다.
그깟 돈, 그게 무어라고.
할매랑 함께 더 오래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은 너무 마음이 무너진다.
좁은 골목길을 돌아 나가며 할매를 본다.
굽은 허리로 오래 서 있을 수 없어
곧 무너질 것 같은 담벼락을 잡고 서 있다.
사진 속 일곱살 아이가
산 너머 국민학교를 다니던 그 길을
천천히 운전해 간다.
눈앞에 희뿌얘 진다.
이 길에
사랑하는 여인과 이혼하고
어린 두 딸을 본가에 맡기고 돌아서는
나의 아빠의 눈물도 베어 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