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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green Apr 10. 2023

2023년 4월

이 나이에 사랑이란 


함께 수업하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의 자료를 보게 됐다. 

학교에서 받은 자료에 "이민호 하트" 라고 써 놓은걸 보고 

이거 남자친구냐 물으니 

얼굴이 금새 빨개진다.


저 아이가 

저렇게까지 밝았나 싶을 정도로 

환하게 웃는다. 


이름만 물어봤는데도 저렇게 설레고 행복할까?


풋풋하다.


아이들이 조용히 문제를 풀고 있는데 

나에게 저 감정은 언제였지 떠올려본다.



대학시절, 

24시간의 자유가 갑자기 주어지자 

정신 못 차리고 이리저리 마구 뛰어 다니던 송아지 마냥 

나도 마음 못 붙이고 돌아 다니다 

한 아이를 만났다.  


아빠 차를 빌려 운전해 온 

키가 큰 그 남자 아이는 1층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친구에게 빌린 청 멜빵 원피스를 곱게 입고 

반묶음을 해 

원룸 3층에서 머리를 만지며 내려갔다. 


흰 suv 차량 앞에서 

추리닝을 멋드러지게 차려 입은 그 남자는 

나를 보고 눈웃음을 지어 보였고 


나도 그가 싫지 않았다. 

아니 첫눈에 반했다. 



첫 데이트로 대천 바다에 가 

퐁당퐁당 발을 담그다 

바다에 빠뜨리려던 짖궂은 그의 장난에 치마가 젖어 

차에 있던 그의 반바지를 입고 

조수석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쫑알 쫑알 마구 떠들어 대는 내게 

"너는 나의 이상형"이라며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던 

그와 나는 꽤나 오랜 시간을 만났다. 



군대를 가기 전 날 

까슬까슬한 빡빡 머리를 부여잡고 울었고 


사격 훈련에 통과하면 전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해 

허락된 1분의 시간 동안 

"aa야. 나야. 나..."

"어떡해..너무 보고 싶어.. 어떡해.."

"나도.. 근데 1분밖에 못 해... 너무 보고 싶어..."



그렇게 둘만 전부이던 세상에서 

취업을 앞두고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고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만 골라 해 대며 

결국에는 이별을 선택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른 남자와 

그도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가 그립지는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이가 들 수록 

그때의 그 감정이 그립긴 하다. 


너는 내가 전부였고 

나에겐 그가 전부였던 그때가. 



지금은 챙겨야 할 것들이 왜이렇게 많은건지.


남편은 직장에서 나이가 있으니 

관리자의 입장이 되어 

하루가 바쁘고 정신이 없다. 


나의 가정의 두 자녀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와 

나의 인내심을 바닥까지 시험을 하며 

서로의 하루를 엉망으로 만들 때가 생겨버린다.


요즈음 나는 남편의 얼굴을 아침에 밥 차려 주며 잠깐, 

퇴근하고 들어온 그에게 저녁 밥 차려 주며 또 짧게 본다. 



사랑이 나이에 맞게 조금씩 변하는 건가,

아니면 열정이 식는 건가.


뜨겁게 사랑했던 나의 배우자에게

내가 전부가 되지 않는 것에 서운함이 커 지면서도

체력을 견디지 못 하고 일찍 누워 잠을 청하는 그가 측은하게만 느껴진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가시돋친 말을 해 대는 딸아이에게 

같이 싸울까 싶다가도 

부모의 사랑이란 대체 뭘까 

혼자 고심하다 

내가 아이에게 해야 할 말을, 마음을 고쳐본다.



오늘따라 

엘리베이터 조명은 왜이렇게 밝은지 

정수리 쪽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게 

마음이 서글퍼진다. 



나는 여전히 그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에게 전부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이 순간이 슬프다.



각자의 시름을 안고 침대에 누워 자는 

이 고요한 저녁, 


서른 아홉의 사랑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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