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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green Apr 12. 2023

2023년 4월

불(火) 2 vs 불(火) 3

"yy야, 6시 50분이야~ 일어나! 이 때 깨우랬잖아!"

...

"yy야, 지금 샤워해야 밥 먹고 가지. 일어나~"

...

(조금 목소리가 높아 지면서)

"yy야! 7시야! 일어나라고!"

"아후 일어났다고!!!"

나:.....


한 번 참는다. 

그게 안되나, "응, 엄마~일어났어~" 이 말투가 안될까?

아침에 입맛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그래도 무어라도 먹이려고 없는 솜씨로 유부초밥을 만드는데 또 마음이 휑하다. 서운하다. 딸아이의 한 마디에 나의 서운함의 고리는 마구마구 뻗어 나간다. 

아니, 내가 저녁에 일까지 하고 와서 아침에 저 먹으라고 이렇게까지 밥을 차리는데 지는 이걸 아는거야 모르는 거야. 세상에 아침밥 차려 주는 부모가 뭐 얼마나 된다고, 호강에 뻗쳐 요강에 똥을 싸라 싸!!!!


혼자 속으로 궁시렁 거리면서도 그래도 '나는 한번 참은 엄마다.'라는 프라이드를 갖고 거실 널찍한 테이블에 유부초밥이 담긴 접시와 오렌지를 담은 그릇을 올려 둔다. 아이가 밥 먹는 모습을 보면 또 잔소리를 할까 싶어 안방 침대에 누워서 폰을 켜 하릴없이 주요 포탈 싸이트나 어슬렁 거리고 사업용 인스타 그램을 아주 흐뭇하게 구경하다가 시간을 보니 밥 먹을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다.

"yy야! 밥 먹어야지!"

"머리 말리잖아!!!!!!!"

나:.......


두 번째 참았다. 울컥하고 또 서운함이 몰려오지만 책에서 그랬다. 사춘기 아이들은 제정신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라고. 그래, 나는 책 내용을 바이블 삼아 살아온 사람이 아닌가. 또 참았다. 그런데 슬프다. 사랑의 결실이고 사랑하려고 낳은 아인데 요즘은 사랑의 감정이 올라오지 않는다. 머리 말린다는 그 한마디에 나는 엄마의 자격이 있는 건가 엄마가 되지 말았어야 했나 자괴감까지 몰려 온다.



아침마다 이런 반복되는 일들이 되풀이 되고 나니 오늘은 운동도 하러 가기 싫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진다. 점핑하러 걸어갈 힘도 없다. 변호사 시험에 붙은 친구가 말했었다. "산 넘고 물 건너니 똥밭이더라고." 뭐가 한고비 넘기면 또 한고비야, 인생을 좀 살만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찬물을 확 끼얹는다.

"니가 뭐 인생을 알아?" 하며 나를 조롱하듯 나는 또 삶이란 놈을 모르겠다. 



딸아이는 2시되면 집에 온다. 1시 반 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오후에는 싸우지 말자. 내가 참자. 그래. 사춘기 학부모는 아이의 태도 너머에 있는 감정을 먼저 보랬지? 그래. 책대로 하자.


"띡디디딕띡"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를 듣는데 마음이 쿵쾅댄다. 부디 싸우지 말자.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딸아이가 들어선다. 한 손에는 떡볶이 컵이 들려져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최신형 휴대폰이 들려 있다. 

"yy야, 그거 뭐야?"

"떡볶이."

나:...

"나 4시 반에 친구들 만나러 나가."

"누구?"

"미나어ㅣ마넝(웅얼웅얼)"

"누구?"

"아 민s 민 k!!!!!"


세 번째 참았다.

자잘하게 이어 나가던 서운함의 고리도 끊어 진 것 같다. 

멍- 하다.



하루에 한 시간 반, 폰 시간을 허용한다. 제 방에 들어가 폰을 보는 그 시간동안은 아주 살얼음판이다. 제 방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불러도 짜증이다. 더럽고 치사하다. 이쯤되면 사회에서 청소년들 폰 사용을 법적으로 제한해 줬으면 좋겠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저 아이는 마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어쩌면 가상 공간의 맘에 안드는 엄마라고 치부해 버리는 걸까. 어디 유투브에 나오는 이상적인 엄마를 보기라도 한 걸까, 요즘 부쩍 내게 마음에 안드는 티를 낸다. 


"yy야, 잠깐 나와 봐. 운동 학원 시간좀 알아보자."

이미 걸어 나오는데 입이 댓발 나온다. 따내는 지 마음의 안식처 같은 영상을 못 보게 하니 짜증이 잔뜩 났나보다. 묻는 말에도 틱틱, 나를 쳐다 보지도 않는다.


참아야 된다, 참아야 하는데, 책에서는 분명히 그 태도 너머의 모습을 보랬는데 

책이고 나발이고 지들은 이렇게 키우긴 했나 반감까지 생기면서 울분을 토했다.


"야!!! 니가 뭔데!!!!!! 니가 뭔데 엄마를 이렇게 무시해!!!!!!!!!"



말 하고도 유치했다. 

읽어댄 책 권수만큼이나 나는 어른이 된 줄 알았지만 개코도, 개코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네. 

정신 연령이 딸 아이 보다 못 한것 같다. 이미 이 싸움에서 진 것 같았다. 자존심 상한다. 부끄럽고 숨고싶다. 아이한테 "니가 뭔데 날 무시하냐니..." 옆집 젊은 신혼부부가 들으면 참 기가 막혔을 소리다. 


아이가 보기 싫어 안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용히 복도로 나온 듯한 그가 말을 건넨다. "왜 또..."

"나 미쳐 버릴 것 같아. 내가 여기서 제일 미치겠는 건 저 아이가 내 밑바닥을 자꾸만 보게 해.

내가 좀 나은 사람인 줄 알았거든? 좋은 엄마가 된 줄 알았다고. 

근데 나는 저 아이를 대할때 마다 인내심도 없고 자존심만 쎈 그냥 고약한 무식한 엄마인 걸 

자꾸만 확인하게 된다고. 그게 미치겠다고!!!!!!!!"


"여보. 근데 어쩌나. 우리가 어른이잖아. 우리가 부모잖아. 

우리 이렇게 서로 이야기하면서 풀고 감정을 털어내고. 우리 감정은 빼고 아이의 잘못된 점을 훈육하자. 

나도 힘들어. 내 눈앞에서 그랬다면 나도 똑같이 화 냈을 거고 무너졌을 거야.

근데 어쩌나. 우리 자식이잖아. 우리 이 고비만 넘기자. 우리 감정은 빼고 아이의 잘못을 혼내고 지적해 주자.

그리고는 사랑해주자. 어쩌겠나."



이 집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고 고상한 척 훈계질에 있어 보이는 척 했지만 실상은 내가 가장 어린 것 같다. 내 앞에서 우스꽝스런 춤이나 추고 시답잖은 말이나 하던 남편이 크게 느껴진다. 안방 드레스룸에 혼자 앉아 감정을 추스르려고 노력하는데 안 된다. 


곧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안아준다. 연애 시절 뜨거운 사랑은 사라졌지만 자식을 함께 키우면서 자아가 무너질 때마다 내 곁에서 큰 산처럼 버팀목이 되어 주고 안아주는 그의 품에서 '이 또한 사랑이구나. 다행이다. 이렇게 지랄 맞은 내 곁에 이런 남편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저녁 수업을 하러 나갈 준비를 하고 남편은 육아 바톤을 이어 받아 비장한 표정을 짓는다.

"yy야, 이리와. 가방 치워. 양말 치우고. " 

나에게 했던 충고 만큼이나 감정을 빼고 흡사 AI 같은 남편의 말투가 우습다. 


"yy야. 이제 학교 갔다 오면 폰 먼저 보지 말고,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간식도 먹고 그렇게 해. 

니가 그렇게 말하면 엄마 기분이 어떻겠어. 어?"


나는 나가려다 딸아이의 반응을 힐끗 봤다. 이성적인 아빠의 말에 자신의 잘못을 조금 뉘우치는 것도 같고 

나는 기분이 상했다는 티를 잔뜩 내고 밖을 나섰다. 



언제였지, 대학교 선배가 사주 공부를 했다며 우리 가족 사주를 봐 준다고 했을 때 우리 딸아이는 불 화(火)가 2개 랬나? 이 아이는 고집이 세다고. 본인이 인정해야 변화가 있지 절대 주변 말을 안 듣는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러고는 오빠는 내 사주를 봐 주겠다고 했다. 

"오빠, 이 집에서 성격 내가 젤 좋을 걸요? 이런거 안 봐줘도 되요!"

"아냐 말해봐. "

(잠시 뒤)

"야, 장난해. 너 불 화(火)가 3개야!!!!!!!! 너네 집에서 니가 젤 성격이 별날 것 같은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그 말이 왜 떠오르지, 참 우습다. 




정신과 상담 마지막 날, 선생님께서 말씀 하신게 또 떠오른다. 

"병원 이제 안와도 되요. 뭐 살다가 또 오고 싶음 오셔도 되고요. 

근데 다음 고비는 사춘기 자식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자리 깔아도 되겄네, 참 용한 정신과 의사네. 


이 고비를,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나는 모르겠다. 잔뜩 사다놓은 사춘기 책들도 보고싶지 않다. 

오늘은 이 두가지만 품고 내일을 살아가야겠다.


불(火) 2개와 불(火)3개의 전쟁, 

그래도 내가 어른이니까 내일 아침 또다시 시작될 전쟁에서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자.


남편처럼 AI가 되자. 

이 고비만 또 넘기고 나면 또 둘째의 사춘기가 찾아 오겠지만 그때는 조금 더 노련해 지지 않을까. 한번 해 봤으면 두 번은 수월하겠지. 그래. 이 밤에 브런치에 오랫만에 글을 길게 남기는 만큼 나의 의지도 다시 굳게 새겨 보자. 나는 내일은 잘 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아직도 마음은 서운해서 눈물이 난다. 

내가 지를 어떻게 키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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