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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 I가 영업을 잘할 수 있는 이유

04. 내적 확신은 뚝심이 되고 자신만의 방식을 추구해 간다

by 임용
넌 왜 이렇게 쓸데없이 고집이 쎄냐?


내 신입사원 멘토는 나와 점심 먹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에 기분은 매우 나빴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죄송하다는 말만 내뱉었다. 물론 그가 내뱉은 말은 신입사원 멘토로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고집, 좋게 말하면 소신이나 뚝심. 나는 내향성 I지만 확실히 맞다 싶으면 내 의견은 강하게 밀어붙이는 성향이 있었다.


신입사원 주도 자율 프로젝트

신입사원으로 수습 꼬리표를 떼기 위해 나를 포함한 동기 4명은 개별 프로젝트 과제를 받았다. 과제는 도전적인 업무 목표를 자율적으로 정하고, 실행할 것.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해도 배울 게 있으니 자유롭게 해 보라는 취지였다. 신입사원이기에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회사는 이 과제를 위해 다른 영업팀에서 멘토를 붙여줬다. 나는 멘토를 꽤 근면성실한 사람으로 소개받았다. 멘토는 40대 중반으로 평범한 아저씨였다. 평범한 외모였지만 회사에서 실적으로 볼 때 능력만큼은 확실히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경계하고 있었다. 그가 어떤 성격인지 모르고, 멘토로 급작스럽게 친해지는 게 자연스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정한 프로젝트 주제

회사는 신입사원에 관심이 많았다. 많은 관심에 부담이 됐기에 나는 가장 주제를 늦게 정했다. 가장 하고 싶은 주제를 못 찾기도 했지만 내적으로 동기부여가 될만한 주제를 찾지 못해 예정보다 늦어졌다. 멘토도 우려를 표했고, 여러 대안을 줬지만 평범한 실적 올리는 주제였다. 나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더 고민하게 됐다. 며칠이 지나 옆 팀에서만 주력으로 판매 중인 괜찮은 제품을 주제로 정했다. 1개당 판매 가격도 높고, 이익도 많이 남는 제품이지만 다른 유통채널 담당 영업직원들은 그 제품을 영업하기 꺼려했다. 판매가 부진해 반품돼버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제품을 다시 시도해보고 싶었다. 판매되지 않았다는 과거에 대한 도전의식, 적절한 고객을 대상으로 잘 기획하고, 실행하면 판매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머릿속에 강하게 들었다. 더구나 신입사원 프로젝트로 적합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적극 영업하겠다는 포부를 밝힐 수 있는 과제라고 생각했다.


나름 며칠간 고민을 거듭해 기획서를 작성했다. 작성한 기획서를 팀원과 팀장, 멘토에게 기획서를 발표했다. 먼저, 기존 제품에 영업이 입점 관리가 잘 되지 않았음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입점 후 관리까지 하는 영업을 제안했다. 호의적인 팀원들의 반응과 다르게 팀장과 멘토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특히 멘토는 대안으로 숫자 목표를 크게 세우고 다른 주제를 권유했다. 나는 멘토나 팀장 의견이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멘토의 과시용 프로젝트가 될 느낌이었고, 자율적으로 내가 주도할 수 없는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를 설득하려는 준비

멘토의 말은 나를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 설득하겠다는 오기가 생겼고, 준비했던 설득 자료들을 하나씩 꺼냈다. 사실 멘토의 이러한 반대를 예상했다. 멘토는 실패를 꺼린다는 뉘앙스가 사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를 배려한다는 생각에 그랬을 수는 있지만 멘토의 표현만 보고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내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더 철저히 설득을 준비했다. 판매 촉진방법을 일자별로 구체화하고, 주차별 예상 매출을 예측한 내용을 담았다. 실패여부를 먼저 예측 판단하고, 보완 방법을 빠르게 실행하기 위한 설득 방법이었다. 또한 프로젝트가 실패할 경우를 보완할 기획안까지 보여줬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와 다르게 멘토는 설득되지 않았다. 멘토는 성공, 큰 숫자 실적을 통해 임원진에게 인상을 남길 것을 핵심으로 삼았다. 반대로 나는 도전과 의미에 더 초점을 뒀기에 다를 수밖에 없었다. 업무차원의 영업이라면 성공과 실적을 따르는 게 맞겠지만 과제로 나는 다른 의미를 두고 있음을 재차 밝혔지만 의견은 평행선을 달렸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며칠뒤 내가 계속 프로젝트를 추진하자 멘토는 결국 네가 원하는 데로 해보라는 말을 남겼다. 체념반 짜증반 느낌의 표정과 함께. 아마도 내가 멘토와 갈등이 있다는 사실이 인사팀장 귀에 흘러들어 갔고 주의를 받은 모양이었다. 나의 프로젝트는 그렇게 다시 재개됐다. 마음 한편으로 상처도 받았지만 고집의 결과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불같이 일했다.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위로도 됐고, 멘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는지 늦었지만 내 프로젝트에 적극 나섰기에 갈등은 일단락됐다.

내 계획은 다행히 괜찮은 결과를 낳았다. 여러 영업사원이 한 개도 소비자들에게 못 팔았던 그 제품은 2주 만에 52개, 1박스가 모두 판매되었다. 그 후에도 거래처에서 주기적으로 잘 판매되는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멘토가 꼬집은 나의 고집스러운 성격 이후 멘토와 서먹해지고 눈도 마주치기 싫어 피하려고 애썼다.


고집스럽게 남은 멘토에 대한 앙금

신입사원 프로젝트는 발표를 마지막으로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젝트 발표가 끝나고 멘토와 팀장은 사과의 말을 전했다. 인사팀에서도 적절치 않게 멘토 역할을 부여한 것 같다며 사과까지 했다. 물론 사과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마음속에는 멘토와 껄끄러운 관계로 남았다. 멘토에 대한 불편한 마음도 고집스럽게 남은 듯했다. 멘토에게는 유대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영업 스타일과 나의 영업 스타일은 어쩌면 반대되었기 때문에 이런 갈등이 빚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는 승승장구하며 회사에서 승진을 거듭했다 전해 들었다. 나는 반대로 다른 회사에서 다시 시작했던 이유도 아마 성향 차이가 있었을 거 같다.

이러한 갈등 뒤로 더욱 나는 내 영업 스타일을 추구했다. 큰 숫자보다는 작은 숫자여도 점진적으로 나아가며 성과를 올리는 방식을 취했다. 그 멘토의 방식과는 거리감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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