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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용 Jun 07. 2021

화가 나서 회사를 차릴 뻔 했다

우리 엄마, 아빠 회사 갑질 이야기

2019년 여름, 엄마는 산부인과 병원 청소를 그만뒀다. 엄마는 이른 출근으로 지칠 때로 지쳤고, 병원도 경영이 어려워져서 그만둬야할 상황이었다. 엄마는 당분간 실업급여를 받으며 쉴 생각이었다.


"아들, 큰 일 났어."


퇴근 후 집에 가니 엄마가 우울한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산부인과 병원 청소 파견업체가 근무시간을 주5일 7시간으로 신고했다. 그래서 엄마가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가 줄어 있었다. 이 사실을 퇴직 후 보름이 지나서 실업급여 교육을 받을 때 알게 된 것이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당장 엄마에게 노동부에 진정을 넣으라고 했다. 엄마는 겁이 난다며 걱정했다. 나는 도와주겠다고 약속하며, 엄마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증거를 수집했다. 엄마의 스마트폰에서 조기 출근을 지시받은 카톡을 찾았다. 그리고 엄마의 출근길에 있는 CCTV를 찾아다녔다. 편의점, 자동차 판매점 등 상점마다 CCTV를 볼 수 있는 지 묻고 다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아. 포기할래."


그 다음주 퇴근을 빨리한 날 나는 엄마에게 진정서를 넣었는지 물었다. 엄마는 넣었다가 취소를 했다고 말했다. 못 받을 거 같다는 이유였다. 나는 엄마에게 화를 냈다. 엄마가 고생한 값이 아깝다고 꼭 월급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미안하지만 그냥 포기하자고 했다. 나는 더 화가나서 씩씩대며 내 방에 들어갔다. 화가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당한 부당 해고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경비를 맡은 지 한달만에 그만뒀다. 근무지 이동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집 근처 15분 거리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 거리 근무지로 아침 5시까지 출근하기를 요구 받았다. 그 때도 화가 났다. 하지만 아버지도 크게 상심해했지만 이 일이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다며 노동부에 진정서를 내지 않았다.


엄마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일주일 내내 화가 풀리지 않았다. 뭐라도 해야할거 같았다. 진지하게 엄마같은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기업을 창업해야 하나 고민까지 들었다.

엄마는 취직을 다시 준비했다. 엄마의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화가 가시지 않아 답답했다. 하지만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쉬운 일부터 나는 해야했다. 취직 정보를 매일 알아보고 전달했다. 그렇게 엄마는 단기일을 구해 다시 일을 시작했다. 6개월이 지나 우연히 공기관 환경미화 공고를 알게 됐다. 엄마와 자기소개서와 면접 준비를 하며 엄마를 취직시켰다.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부모님도 억울하고, 화도 많이 났을 거다. 그러나 법의 절차를 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불안감 때문이다. 행여 나중에 불이익이 되진 않을 지, 내 자식이 피해보지는 않을 지 등 나중에 발목 잡는 일이 될거 같아서다.

지금도 뉴스에서는 60대 직장인들이 불이익을 받는 뉴스들이 많다. 경비원으로, 청소원으로, 환경미화원으로 해고 아닌 해고, 불합리한 관행 등 끝이 없다. 그래서 정부가 공기관 청소미화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민간 기업이 절대 할 수 없고, 하지도 않을 영역이라 그럴 수 밖에.

그렇지만 아직도 부모님과 비슷한 경험 뉴스를 보면 화가 난다. 한숨 한번 쉬고, 이런 문제와 관련된 좋은 사회적 기업은 없는 지 한번 찾아본다. '사회에는 아직 그래도 좋은 사람이 많구나' 하며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에, 무언가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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