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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용 Dec 16. 2021

MZ세대는 낙인이자 허상이다

한 집단을 묶어 정형화하지 마세요

MZ세대라는 단어가 뉴스나 기타 콘텐츠를 도배하고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MZ세대는 다르다는 정보들이다. 높은 퇴사, 재미를 추구한다 등 많은 뉴스들이 MZ세대 특성이라 말한다. 그러나 MZ세대는 정말 다를까. 내가 보기에는 기성세대와 일부 가치관의 차이는 있겠으나 맥락을 보면 시스템이 오래되고, 시스템으로 발생한 결과였을 뿐이다. 따라서 MZ세대는 기성세대나 언론이 만들어낸 낙인이.


MZ세대라는 것은 낙인효과다


낙인효과는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면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MZ세대도 언론 또는 기성세대의 낙인이론이 적용되는 현상이다. 대부분의 뉴스들이 말하는 MZ세대와의 갈등은 기성세대가 구축한 시스템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가 다른 생각과 행동으로 발생하는 문제다. 그 문제를 자세히 보면 기성세대를 기준으로 본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이지 도덕적인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젊은 세대가 변화하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행동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어느 시대, 나라든 젊은 세대는 사회를 바꿔보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의식이 있었다. 기존 사회에서 발생한 폐단, 문제를 봤고, 고민했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공유하며 세대가 통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 어쩌면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변화의 욕구를 수용해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요 언론도 기존 질서에서 태어난 전통적인 미디어다. 그러다 보니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문제가 발생한 듯 표현하며 세대 간의 간극을 더 부추긴다.


MZ세대의 특징이 아니다. 기성세대가 만든 시스템의 결과다


쉬운 퇴사, 부캐, 정시퇴근 등 MZ세대의 특징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것들이 새로운 특징이 되었을까? 젊은 세대가 겪은 유년기 시절에서 문제를 찾아볼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젊은 세대는 IMF와 금융위기를 겪으며 더 이상 회사는 안전한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회사에 충성을 다했지만 회사로부터 버림받은 부모님을 보며 젊은 세대는 회사는 돈을 버는 수단 중 하나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회사는 나를 버릴 수 있고, 나도 회사를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승진이나 회사의 충성도는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자신만의 또 다른 능력, 삶 등에 더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

이렇듯 사회 시스템과 환경은 기성세대가 구축했다. 그에 따라 맞게 행동에 양식이 변화된 것이다. 새로운 특징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만든 시스템과 환경에 대응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회사는 기성세대의 시각과 시스템에 머물러 있다. 새로운 대응이 나타나자 시스템과 환경에 문제가 생겼다. 대기업들이 직면한 성과급 문제가 대표적인 예다. 기성세대 입장에서 만들어 놓은 시스템으로 성과를 측정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가 시스템을 분석해보니 공정성이라는 가치에 문제점을 발견한 것이다.


MZ세대 분석 허상이다


새로운 세대를 분석한다는 것은 기성세대 입장에서 관찰해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본다고 해도 누군가의 시각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MZ세대를 본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더구나 MZ세대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MZ세대라고 불려야 하는 연령층이 20~30대이다. 20대와 30대도 서로 격차가 있다. 더구나 같은 연령대더라도 그 속에서 직장유무, 성 등에 따라 가치관도 다양하다. 하지만 언론과 기성세대는 퉁쳐서 묶어버린다. 이러한 것은 기성세대나 언론이 좀 더 편하게 새로운 세대를 해석하는 욕구가 담겨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에서 새로운 세대를 파악하면 매우 위험하다. 새로운 세대의 특성을 정형화하여 판단한다면 개개인을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더구나 더 나아간다면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가 보이는 특성에 정형화된 기준을 비판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MZ세대로 묶어버려 판단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만든 프레임에 불가하다. 그리고 그 프레임은 허상이다. 모두 다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모두 맞다고도 할 수 없는 이상한 프레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새로운 세대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은


기성세대는 그렇다면 새로운 세대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포용력이다. 그 포용력에는 용기 있는 인정과 반성, 그리고 행동이 담겨있다. 기성세대는 먼저 새로운 세대가 표현한 이야기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의견 속에 드러난 자신들이 만들어낸 시스템과 제도, 업무처리, 가치 추구의 문제를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 후에는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가 힘을 합쳐 문제를 개선하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존경받는 어른들은 항상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수용했다. 아무리 젊은 세대의 날 선 문장과 패기를 무장한 행동도 도덕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존경받는 어른들은 경청하고 존중했다. 경청을 위해 새로운 세대에 색안경과 같은 MZ세대라는 프레임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시스템도 파괴할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고민하며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언론은 세대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존재가 아닌 그 속에 내포된 진정한 문제에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어도 동일하다


기성세대가 이런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어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동일하게 새로운 문제가 부각되고, 세대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의 지금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 결정해야 한다. 프레임에 갇혀 기성세대 입장에서 볼 것인지, 새로운 세대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주는 더 진화한 세대로 평가받을 것인지를. 하지만 해법은 동일하다. 프레임을 버리고, 새로운 세대의 의견을 적극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앞으로도 새로운 세대는 계속 태어난다. 그들을 관찰자 시점이 아닌 한 명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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