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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용 Feb 03. 2022

아버지들은 왜 병원 가기 싫어할까

아버지가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에 관하여

평범한 퇴근길 누나가 카톡을 보냈다.

"아빠 치매검사받으셨대."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됐다. 머릿속에는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했다.

"다행히 이상은 없고, 나이가 있으셔서 건망증만 있대"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갑자기 병원의 '병'자도 못 꺼내게 하던 아버지였기에 병원에 간 사실이 의아했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야 아버지는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는 병원을 거부하는 사람이었다. 정부가 치매 검사, 독감 백신 등 무료로 해준다고 해도 거절했다. 거짓말로 누나가 회사에서 건강검진권을 선물을 받았다고, 병원에 가자고 해도 싫다고 했다. 그렇게 완강히 거부했던 아버지가 선뜻 치매검사를 하러 먼저 움직였다는 것에 궁금증이 커졌다. 그리고 주말이 되어 어머니에게서 아버지가 병원으로 가게 된 사건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는 평소처럼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기 위해 열쇠로 대문을 열었다. 하지만 대문은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걸쇠가 걸려있어 집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실수로 대문의 걸쇠를 걸었다. 더구나 아버지는 청각장애가 있다. 그런데 집에서는 보청기를 잘 착용하지 않아 전화를 해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머니 마음은 더 속이 탔다. 어머니는 계속 기다리고, 아버지를 불렀다. 걸쇠가 걸려있는 작은 틈과 벨을 지속적으로 눌렀다. 그리고 전화도 계속했다. 약 2시간의 사투 끝에 아버지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걸쇠를 풀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미안해하며 먼저 치매검사를 받으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어머니는 바로 집 근처 병원에 전화를 걸어 치매 검사를 예약했다.


건망증에도 아버지는 아직 예전의 날카로운 논리력을 갖고 있었다

MRI나 별도의 치매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 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의사에게 결과를 듣고자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 결과 다행히 치매가 아니었다. 의사는 노화에 따른 건망증으로 진단했다. 물론 건망증이 심해지면 치매가 될 수 있지만 아직은 분명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아버지는 건망증과 치매는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의사는 놀라며 아버지가 꽤 논리적인 질문을 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건망증과 치매가 어떻게 다른 지 질문한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치매와 건망증을 설명하며, 이렇게 질문까지 하실 정도면 아버지는 분명 치매가 아니라고 말했다. 어머니도 수긍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쓸어내렸다. 이렇게 해프닝으로 끝났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꽤 날카로운 논리력을 갖고 있었다. 나름의 논리력으로 부동산, 주식 투자에서 혼자 공부하며 꽤 성과를 거뒀다. 학력은 없어도 배움은 지속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논리력으로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아버지는 치매가 아닌 것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논리력도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병원 가기 싫은 건 병보다 더 큰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는 치매나 다른 병으로 가족이 모두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15년 전 할머니는 치매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가 직접 한 달간 할머니를 집에서 수발하며 버텨보려 했으나 매우 힘들었다. 그로 인해 본인의 건강까지 나빠지고, 생계도 불안해졌다. 몸이 매우 좋지 않아지자 아버지는 스스로 곧 죽을 수 있는 병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혼자 몰래 영정사진으로 쓸 사진까지 준비했다. 남아 있을 아내와 자식들이 영정사진으로도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운이 좋게 아버지는 건강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 후부터 자신의 병으로 가족들이 고생시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게 됐다.

건강 위기를 겪고 완치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자, 아버지는 병원으로 가는 발길을 끊었다. 병원 포비아라는 말이 있다면 어울릴 거라 생각할 정도였다. 경미한 교통사고로 전치 4주에도, 아버지는 1주일 만에 입원실에서 도망쳤다. 보험사에서 돈을 다 내준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한사코 퇴원을 강행했다. 그 이유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아버지는 병으로 인해 아내와 자녀가 걱정이나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게 하싶은 마음이 강하다. 그 마음이 아버지가 병원 가기 싫은 이유라 짐작해 본다.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모두는 정기적으로 검진받는 것이 도움 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버지는 입장이 다르다. 자기에게 쓰일 돈과 걱정, 시간을 아껴서 어머니와 자녀들이 편하게 살도록 만들어주는 것. 그것 하나 바란다.


치매가 아니기에 아버지의 얼굴이 좋아졌다

아버지가 치매가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에게 안도감을 줬다. 아버지의 기분도 매우 좋아 보였다. 다른 경미한 질환이 의심되자 병원에 다시 가보는 것도 아버지는 받아들였다. 치매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가 아버지의 불안감을 매우 낮추었던 것 같다.

안심은 됐지만 그래도 나는 집에서 TV와 담배로만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가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신문 구독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주식과 부동산을 위해 신문을 열심히 보는 모습이 내 어릴 적 기억에 가장 멋졌다. 그리고 청각으로 안된다면 시각적인 정보로 아버지의 뇌를 꾸준히 자극시키면 건망증을 어느 정도 완화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돈은 회사에서 내준다고 거짓말은 했지만.
아버지가 우리를 생각하는 것처럼, 신문구독으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자 효를 나름대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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