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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용 Mar 10. 2022

체크카드를 바꾸고 서운했다

오래 관계가 지속되는 마케팅은 왜 없을까?

그날은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시장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대학생 시절 자주 들렸던 맥주집이 없어져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없어졌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집으로 옮기던 찰나, 문자 하나를 받았다.


"오늘 새로운 카드가 배송됩니다"


국민은행에서 보낸 문자는 대학생 시절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체크카드는 대학생을 위한 락스타 체크카드였. 계좌번호가 내 학번으로 되어 있어 락스타 체크카드는 더욱 애정이 갔다. 그래서 매일 교통카드로, 신용카드 대신으로 매일 사용했다. 락스타 체크카드를 자주 사용하다 보니 어느 순간 국민은행은 내 주요 거래 은행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카드를 더 이상 갱신, 신규 발급이 안되고 새로운 브랜드의 카드로 발급만 된다고 하자 서운했다. 공교롭게도 맥주집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그 날, 락스타 체크카드가 바뀌었기에 대학생 때의 추억들이 많이 사라지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내 마음에는 아쉬운 마음이 배가 됐다.


락스타는 한때 대학생의 상징

락스타는 2011년부터 KB금융그룹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잠재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브랜드였다. 대학생을 위한 브랜드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꽤 마케팅을 잘했다. 은행이나 ATM은 대학교 앞 찾기 쉽게 위치해 있었고, 락스타 존이라는 회의룸 같은 공간도 제공했다. 그리고 대학생을 위한 금리 우대와 소비 혜택, 공모전, 해외 탐방 등 다양한 이벤트와 이점으로 대학 생활에 밀접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내 주변에 많은 대학생들은 락스타 체크카드 하나는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KB금융그룹은 2020년 8월 수익성이 나쁘다며 락스타 체크카드의 신규, 갱신 등을 중단했다. 그렇게 락스타라는 브랜드는 사라지는 길을 선택했다.


브랜드가 사라지면 고객도 사라져야 하는가?

새로 온 체크카드는 혜택은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마음이 채워지지 못했다. 지갑 속 카드는 바뀌었지만 마음은 교체되지 않았다. 새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혜택이 그대로인 것도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교체해준 체크카드가 바뀌어버린 내 소비 패턴에 맞는 지도 의문이 들었다. 감정으로 체크카드를 바라보다 객관적인 눈이 떠져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락스타라는 브랜드로 10년이나 버텼지만 이렇게 끝을 맞이하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브랜드가 사라졌다고 이렇게 카드만 바뀐다는 게 아쉬움이 컸다.

물론 나도 대기업을 다니기 때문에 없애는 결정은 잘 안다. 수익성 악화가 결정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랜드를 없애면, 기존 고객과 관계를 유지할 면밀한 전략도 있어야 했다. 출시에 화려하게 공을 들이는 것만큼 사라지는 출구 전략에도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만 했다.


브랜드, 장기성과 연속성이 없다

락스타를 떠나보내며 생각이 든 것은 마케팅과 브랜드를 통해 두 가지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많은 기업들이 장기적인 브랜드 육성 계획이 없다. 기업도 브랜드도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과정과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브랜드를 장기적으로 바라는 기업이 많지 않다. 기업도 브랜드도 육성에 가치를 위한 장기적 계획이 부족하다. 그 이유는 대기업 시스템에서는 장기적인 계획은 거의 불가능하다. 주기적인 임직원의 직무 순환과 단기적 성과에 비중이 큰 KPI 체계로는 장기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장기적인 브랜드는 어느 순간 위대한 사업, 기업, 조직이 되어 있다. 대중음악에서는 BTS, 영화는 비포 시리즈처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리스크라는 이유로, 조직과 사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장기적인 것은 거의 없다.

둘째, 고객이 정형화되어 있어 이별이 쉽다. 기업에서 기획할 때의 타깃 고객은 현재 시점에서만 정형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 타깃 고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이가 들고, 취향은 다양하고, 변해간다. 그때마다 대기업기존 브랜드를 없애고, 새로 만들어 또다시 고객을 정의한다. 그러다 보니 브랜드를 쉽게 없애고, 고객과 빠르게 이별한다. 새로운 브랜드로 고객 유치를 위해 더 많은 마케팅 비용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지만 결정이 너무 쉽다. 쉬운 이별에 대한 큰 대가를 지불함에도 새로운 것을 찾는다.


두 가지를 담은 작은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첫째, 장기적이고, 고객과 브랜드가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장기적인 계획이 짜임새 있게 갖추어져야 한다. 기존 정형화된 고객 분석을 넘어 고객 생애를 스펙트럼 화하여 고객도 시간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객에 대한 단순 분석도 필요하면서, 시나리오에 맞춰 브랜드를 성장하도록 기획해야 한다. 이는 인사 변화가 연 단위로 있는 대기업에서 실행하기는 어렵다.

둘째, 고객과 관계 중심으로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매출과 손익은 중요하다. 하지만 고객과 브랜드 사이의 관계도 중요하다. 고객과 관계가 브랜드의 중요한 자산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객과의 소통, 잘 듣고 반영하며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고객도 관계를 중시하고, 브랜드의 주인이라 느낄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

두 가지를 담은 브랜드는 작게 시작해야 한다. 기업이 아닌 개인적인 프로젝트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쉽게 사라지는 휘발적인 브랜드를 넘어 마음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 이름이 아닌 관계로, 그리움이 아닌 성장과 성숙을 함께 하는 브랜드. 빠름보다 느리지만 성장을 추구하며, 작게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만드는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다. 큰 아쉬움을 남긴 맥주집과 락스타 체크카드는 추억을 회상시켰고, 미래의 꿈이자 과제를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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