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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09학번 부자는 통장과 회사 밖에 있다

11. 자립이 어려운 시대

by 임용

부모님 외에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누나와 매형이다. 나는 누나의 결혼을 얼토당토 안 되는 이유로 반대했었다. 그때 너무나 몽니를 부린 것 같아 누나와 매형에게 마음 한편 미안한 감정이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보다 제일 잘 결혼했다 생각한다. 매형이 결혼했던 나이가 딱 내 나이쯤이었다. 매형은 누나와 살 신혼집을 준비해 결혼 승낙을 받으러 왔었다.


누나 부부의 신혼

매형이 마련한 신혼집은 아늑했다. 방 2개, 거실, 주방 등 있을 것은 다 있었다. 둘이 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딱 좋은 크기의 아파트였다. 요즘 신혼부부들에게도 첫 집으로 살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더구나 서울 근교, 둘의 직장도 가까운 광명 인근 지역이었다. 크기나 위치도 적당한 집을 매형이 마련해왔다. 은행 대출이 꽤 있었지만 능력이 있기에 대출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 당시 세상 물정 모르던 나는 매형이 신혼집을 마련하는 것은 기본이라 생각했다. 매우 거만했고, 그만큼 누나를 시집보내기 싫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누나는 식구를 늘렸다. 조카가 태어난 것이다. 그러자 집은 좁아 보였다. 그래서 방 하나가 더 있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열심히 일하며 대출 이자를 갚고, 돈을 모았다. 이를 토대로 넓은 집으로 살림을 옮겼다. 누나 부부는 부모님 지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더욱 부지런히 살아가며 집도 넓히고, 가정을 꾸려나간 것에 존경심이 들 정도다. 내가 30대 중반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나니 매형과 누나가 참 고생했겠구나 느껴졌다.


07,09학번 세대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이야기

수도권에서 매형과 누나의 무일푼으로 시작해 아파트를 사고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린 이야기는 누나 세대까지였다. 지금은 자신이 모은 돈으로 내 집(아파트) 마련과 결혼 시작은 매우 어렵다. 애초에 전세 자금부터 마련하는 것부터 큰 과제다. 주변에는 집(아파트)을 마련하고 결혼식을 올린 친구들이 주변에 종종 있다. 그들 대부분은 양가 부모님에게서 지원을 받았다.

우리 또래에서는 자신들이 벌어놓은 돈으로 일반적인 결혼식과 혼수를 치르고 나면 통장 잔고에는 0이 찍힌다. 혹여 모아놓은 돈이 꽤 있어도 수도권에서 주택 매매는 꿈꾸기 어려운 환경이다. 아파트 시세가 너무 높고, 시세가 낮으면 빌라가 대부분이라 매매를 꺼린다. 우리 세대가 호화 결혼식을 치른 것도 아니고, 돈을 물쓰듯한 것도 아니다. 성실히 생활하고, 가성비를 추구했다. 그럼에도 통장과 대출로도 누나 부부처럼 아파트를 마련할 만한 여력이 없다.

누나와 나는 6살 차이, 매형과 나는 띠동갑이 넘는다. 크게 변하지 않을 세대인 듯하여도 부동산 시작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매형과 나 그 격차에는 무엇이 숨어있을까.


자산 상승률 > 임금 상승률

부동산과 같은 자산이 임금 상승보다 크다. 그래서 누나 부부처럼 신혼에 집 구매가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하버드 교수 피케티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자산의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보다 높았다고 한다. 주식, 부동산 등 자산을 갖고 있는 것이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보다 더 부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KB금융 2022 부자 보고서를 보면 이러한 사정은 우리나라에서도 드러난다. 3040 신흥 부자들에게 부자 비결을 물었다. 그들은 부의 밑거름이 되는 종잣돈을 ‘아빠·엄마 찬스’인 부모 지원으로 마련한 경우가 많았다. 최소 7억 원 이상의 종잣돈을 부모의 지원·상속·증여를 통해 모았다는 답변 비중이 50대 이상의 전통 부자보다 높았다고 한다. 또한 2000년부터 20년간 임금은 약 43% 증가했다. 반면 서울의 20년 동안 집값 상승률은 무려 419%를 기록했다. 이러한 숫자의 격차만 보더라도 임금으로 집을 구매하는 것은 너무 어려워졌다.

한 청년이 전통적인 근로소득에 의한 저축으로 집을 사고, 부자를 꿈꾸기는 어렵다. 일정 금액 종잣돈을 모으면 자산을 늘려나가는 것이 부의 진리로 사회 통념화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07,09학번 세대도 잘 체감하고 있다. 매년 회사에서는 임금인상 5%를 가지고 사측과 협의한다. 커 보이는 듯한 5%는 막상 물가를 체감하면 통장에 남지 않은 연봉 숫자가 되는 것은 매한 가지다. 그래서 오죽하면 작고 귀여운 월급이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 오간다.


통장과 직장 밖에 있는 07, 09학번의 부자 로드

조금 허탈했다. 신성한 노동의 가치가 저평가되는 기분이다. 그러나 내 꿈과 부자가 연결될 필요가 없기에 실망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나는 각자 원했던 직업을 가졌다. 그리고 자신의 경력을 차곡차곡 쌓고 있는 중이다. 이와는 별개로 경제적 자유로움은 또 다른 영역의 목표다. 그래서 내 일에 있어서 돈보다 자아실현의 가치를 따라야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 덕에 저평가된 노동의 가치에는 실망했어도 종잣돈이 없는 것에는 실망하지 않았다. 종잣돈은 지금부터 만들면 되는 것이니까. 다만 경제적 자유는 통장만으로, 직장인으로만은 절대 이뤄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돈을 모아 자산으로, 돈이 아닌 것도 자산으로 만드는 것이 경제적 자유의 시작이라 느꼈다. 또한 나는 종잣돈만큼 더 가치 있는 자산을 갖고 있다. 누나와 매형에게서 배운 자립의 자세다. 그래서 07, 09학번 우리 부부에게는 실망과 허탈함에서 벗어나 미래의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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