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둥이 죄책감 is free
01. Being a father
"아버님 이시죠?! 산모와 아기는 건강합니다."
이 한마디에 나는 걱정 하나를 덜어냈다. 아빠가 된다는 낯선 순간이었다. 그러나 낯선 느낌도 잠시 나는 아빠가 되는 빠른 과정에 들어갔다.
가을이 한창인 금요일 퇴근 직전. 아내가 전화를 했다.
"오늘 일찍 와줄 수 있어? 나 산부인과 병원 가고 있어."
아내의 말에 무엇인가를 직감하고 알겠다고 했다. 그러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갔다. 아내는 임신 34주 차였다. 무언가 위기감이 느껴졌다. 회사에는 상황 설명을 하고 가방을 챙겼다. 이내 아내는 다시 전화를 했다.
"아기를 낳아야 한대"
근처 대학병원으로 전원 간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마쳤다.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지하철 승강장까지 미친 듯이 달렸다. 헉헉거리는 숨차 오르는 것도 아내의 상황에 비하면 사치라 느껴졌다. 오후 6시 사람이 꽉 차있는 지하철에 몸을 꾸겨넣었다. 내 정신은 아내와 아기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꽉 채웠다. 정신없이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응급실로 곧장 갔지만 아내를 만날 수 없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나는 응급실옆 보호자 대기공간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30분이 지나 나는 고위험산모 분만장 앞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아내는 임신 중독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임신중독은 임신중 고혈압 상태라고 나왔다. 장모님과 함께 분만장 앞에서 대기하기를 3시간. 의사가 나와 아내와 아기가 건강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건강히 아내는 고위험 산모를 위한 전용 회복실로 돌아가는 모습을 잠깐 보여줬다. 그리고 새벽이 되어서까지 아기의 소식을 기다렸다. 새벽 2시즈음 소아과 전공의 의사 선생님이었다. 34주 차 이른둥이라 폐가 덜 성숙하여 신생아중환자실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더구나 아빠지만 아기를 만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48시간내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결과를 제출해야 했다. 간단히 간호사님의 신생아 입원, 면회를 위한 코로나 검사 안내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점심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에도 배고프진 않았다. 오히려 마음 한편 아내와 아기에 대한 걱정, 죄책감이 들었다.
집에서 약간의 잠을 청한 후 인터넷에서 임신중독을 찾아봤다. 임신중독의 원인은 알수 없었다. 다만 2018년 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이른둥이는 22% 증가했다.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출산연령이 고령화됐기 때문이라는 기사만 보였다. 아내는 지병도 없고 30대 초반이었다. 오히려 건강한 출산을 위해 평소 운동했던 헬스와 필라테스도 더욱 꾸준히 했다. 심지어 건강검진을 통해 나온 아내의 자궁 연령은 20대 중반을 가리켰다.
아내가 건강하기에 다행이었지만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나와 같은 죄책감 때문인지 아내는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에 눈물까지 흘렸다. 우리가 부주의한 것이 아님에도 죄책감이 들었다. 부모가 되어 갖는 첫 느낌이 병원에 조금 더 있게 하는 미안함, 그리고 아프다면 책임과 고통도 다 내가 짊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아내와 나는 아기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내는 건강을 위해 꾸준히 운동을 했다. 당일 몸이 좋지 않아 집에서 혈압을 측정했다. 혈압이 높아 걱정되어 병원으로 갔다. 나도 최선을 다했다. 최대한 집안일을 배제시키려했고, 함께 운동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죄책감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많은 이른둥이 부모님들이 우리와 비슷한 마음이다. 관리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른둥이로 태어날 수 있다. 유튜브나 지인들을 보면 의료인들도 자녀들에 이른둥이인 경우가 꽤 많았다. 오히려 이른둥이로 무사히 세상에 나와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위복으로 생각이 전환됐다.
그러나 이내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졌다. 정확히 말하면 죄책감은 줄어들고, 아기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 더 안정감 있는 사랑을 전달하겠다는 의지가 더 커졌다. 아기를 위해서라도 죄책감이라는 마음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또한 엄마, 아빠의 사랑과 노력에 시간만 지나면 아기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더 믿기로 했다. 더 의연하게, 참을성으로 아기가 건강해지기를 의료진을 믿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기다림끝 퇴원후에는 미안함보다 사랑을 더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더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죄책감보다 아기에게 안정감을 더 선물하고 싶은 이른둥이 아버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