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4월 8일 격리 2일 차

19개월 1일

by 마이문


마음을 넓히고 비우는 하루였다. 밤새 열에 시달리느라 10시가 다 되어서야 하루를 열게 된 우주의 컨디션을 따라 식사와 잠을 조절하기로 마음먹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은 말도 안 되는 시간에 먹게 되었고, 먹는 둥 마는 둥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의자를 탈출하려는 우주를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낮에 한껏 올랐던 열에 지쳐 잠든 우주가 잠깐 자고 힘겨워 일어났을 때도, 그래서 하루 종일 졸린 눈을 하고도 버틸 때도 그저 하고 싶다는 대로 두었다. 자야 하는데,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습관적으로 애태우는 마음을 마음 밖으로 꺼내어 넓히고 비웠다.


서방구는 하루 종일 붕 뜬 사람 같았다. 우주의 상태를 살피느라 밤잠도 설치고, 아픔을 이겨내려 밖으로 풀어내는 우주의 여러 가지 행동을 온몸으로 받아내느라 긴장하고 지친 나는 그런 서방구의 모습이 보기가 싫었다. 기회만 닿으면 핸드폰을 하고 재택근무랍시고 방에 들어가 있지만 일하지 않고 있다는 건 느낌으로 알겠고. 순간순간 내 말투에 날이 섰다. 그러면서도 싸움으로 번지기 직전의 수위를 지켰다. 그리고 호흡을 고르고 서방구가 오늘 대량의 설거지를 두 번이나 해치웠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상기시켰다. 그가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다. 결코. 그러니 틈을 주자. 오늘을 견뎌낸 우리의 시간은 우주가 잠든 후에 회포를 풀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일과의 끝을 기다렸다. 그런데 서방구는 우주 방에서 나오자마자 안방으로 들어가 핸드폰부터 다시 열었다. 여러 번 다가가 인기척을 냈지만 계속 혼자 누워있고 싶은 듯했다.


견디던 마음이 구겨지는 것 같았다. 오늘 저 양반의 정신은 다 어디에 가있던 걸까. 책상에 앉아 하루를 복기했다. 서방구는 아침에 어떤 계기로 마주하기 어려운 사실을 직면했다. 사실이라면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을 정도의 숨겨진 비밀이었다. 알게 된 후에 그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에게 가볍게 꺼낸 이야기는 이미 모든 에너지를 우주에게 쏟고 있던 나로서는 호숫가에 떨어진 깃털만큼이나 존재감이 없었다. 그 이야기를 저녁식사하다가 다시 꺼냈을 때 흥분하던 서방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생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겠다. 왜 그걸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까. 아침부터 심장이 두근거렸을 것이다. 하루 종일 마음이 붕떠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않고 누워 잠이 들고 싶을 것이다. 이번에도 오늘 하루를 위로받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을 마음 밖으로 꺼내어 넓히고 비웠다. 아직 길다. 우리의 격리는 이제 시작이다. 이렇게 한 번쯤은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어도 내 마음에 큰일이 나지 않는다. 나에게는 갓 발견한 흥미로운 책이 있고, 써야 할 일기가 있고, 사촌 유라와 함께 낭만에 대해 신나게 떠드는 카톡이 있다. 그리고 우주가 곤히 잘 자고 있다. 충분한 위로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밤이다.


내일도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챙겨 먹고 점심 즈음엔 특식으로 파스타나 우동을 먹어야겠다. 오후 3시가 되면 거실 중간까지 들어오는 뜨거운 햇살을 창문 활짝 열어 맞이하고 햇볕에 발을 내밀어 비타민D를 충전할 거다. 우주가 낮잠에 들면 책도 보고 누워있기도 해야지. 저녁으로는 찜닭을 해 먹으면 좋겠다. 아침에 나올 서방구의 pcr 검사 결과도 궁금하다. 우리의 격리는 언제까지가 될까. 아무튼 둘째 날은 이렇게 무사히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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