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4월 10일 격리 4일 차

19개월 3일

by 마이문

오늘도 무사한 하루였다. 서방구가 조금 힘들어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 나와 우리와 함께 보내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우주는 열이 다 내렸으나 여전히 잠드는 것을 싫어했다. 아무래도 그냥 부리는 투정이 아닌 것 같아서 주말에도 비대면 진료가 열려있는 소아과에 전화해 약 처방을 새로 받았다. 잠들기 힘들어하고 잠 들어서도 무언가를 삼키며 뒤척이는 일이 잦다고 하니 코가 부어서 힘들어하는 아기들이 있다고 설명해주셨다. 방역당국에서 약 처방을 위한 외출은 가능하도록 제한을 풀어주어 서방구가 약을 찾아왔다. 빠른 대처가 가능한 시스템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감사하기도 하고.


나에게 남은 원이 없다는 걸 확인한 하루였다. 원래도 쉴 틈 없는 하루였지만 서방구까지 인원수가 셋이 되니 더 정신없었음에도 마음이 잔잔했다. 어떤 일이 주어지더라도 불평 않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나는 임신을 확인함과 동시에 코시국에 입성했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작은 생명의 안위에 관한 걱정으로 2년을 채웠던 것이다. 2년 동안 기본으로 달고 살던 불안이 떼어지니 이토록 가볍구나. 우리 모두가 코로나로 품었던 불안의 크기가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는데 실체를 마주하고 나니 그 불안이라는 놈, 크기가 꽤나 컸구나 싶다. 격리기간이 하나도 답답하지 않다. 7일 격리? 2년의 족쇄가 풀렸는데! 7일은 콧구멍의 코딱지보다도 더 작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모두 무사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배부른 생각임도 안다.


우주를 재우고 저녁인지 야식인지 모를 라면을 먹고 열띤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주제는 일상의 영성. 지루하고 별것 없는 일상에서 발견하는 감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끝에 우리는 내일 하루 동안 미디어 없이 지내보기로 했다. 아까 낮에 잠깐 우리 둘 다 핸드폰을 하고 있던 타이밍이 있었는데, 카톡에 답장하다가 문득 우주를 보니 우주가 우리를 보다가 아무 말 없이 혼자 거실장을 열어 잘 보지 않던 장난감을 뒤지고 있는 게 아닌가. 우주가 만약 말을 할 수 있었다면 핸드폰을 그만 보면 좋겠다고 했을 것 같다. 그렇게 말했더니 서방구가 내일 하루 미디어 없이 지내보자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졸린데 잠도 미루고 둘 다 핸드폰에 코 박고 있다. 내일이 기대된다. 미디어 없는 하루라니. 어떤 모습일까!


내일부터 기독교 절기로 고난주간이다. 지난주 월요 묵상 중에 올해는 바쁘다는 핑계로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인지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심지어 성 금요일인 17일에 장기하 콘서트를 예매해두었으니. 평소에 공부 안하던 학생이 벼락치기에 목숨 걸듯, 그 사실을 알자마자 티켓팅 해준 서방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티켓을 취소했다. 그런데 코로나 감염으로 아주 집에 콕 박혀 정말 진짜 고난주간을 깊이 묵상할 수 있게 되다니. 그것도 셋이 똘똘 뭉쳐서 말이다. 미디어도 멀리하기로 했으니 아주 제대로 금욕하는 고난주간이 되겠다. 내 신앙도 한 뼘 더 하늘에 가까워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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