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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5월 5일 날씨 오지고

19개월 28일

by 마이문

어린이날이다. 우리 집 어린이는 아직 어린이날이 무언지 모르니까 특별히 뭘 하지는 말자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우주가 사랑하는 이케아에서 세 시간이나 보내고 왔다. 나도 서방구도 사람 많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있는 것을 힘들어하는데, 날이 날인만큼 이케아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신나게 노는 우주를 지켜보기만 하는데도 진이 빠졌다. 우리 집에서 서해로 바다를 보러 가는데 한 시간이면 충분해서 급 여행을 떠나볼까 생각도 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리 모두 졸음이 가득해서 그만두었다.


내일은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가기로 했다. 집에 서방구와 우주를 두고 자유의 몸으로! 그러려면 두 사람이 세끼 먹을 식사를 챙겨두고 가야 해서 저녁에는 내내 요리를 했다. 찜닭은 갈수록 손에 익어 수월하고 맛도 더 좋아진다. 무나물은 내가 안 좋아해서 계속 미루다가 처음 도전해보았다. 오랜만에 오이무침을 했더니 우주가 놀다가 달려 나왔다. 오이를 또 자기 주먹만큼 먹었다. 마지막으로 잠자기 전에 시금치 된장국도 끓였다. 내일 아침에 소불고기만 완성하면 된다!


요즘은 짬이 날 때마다 드라마를 본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서른아홉'으로 시작해 '사내 맞선'을 지나 '나의 해방 일지', '우리들의 블루스'로 넘어왔다. 이렇게 연달아서 좋은 드라마가 나오는 시기는 인생에 얼마나 될까? 누려야 한다. 앞의 두 드라마에서는 살고 죽는 것에 대해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는 뒤의 두 드라마는 마음이 계속 짠 하다. 그러면서도 배우들의 명연기에 감탄이 멈추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다. 대신에 마음이 느낀다.


오늘 내내 우주에게 내일 엄마는 친구를 만나러 다녀올 거니까 아빠랑 둘이 맛있는 거 먹고 재밌게 놀아야 한다고 일러줬는데, 전처럼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자꾸 맘에 걸려서 우주가 잠든 후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주가 위험한 행동을 할 때, 자꾸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고집부릴 때, 이유 없이 짜증을 낼 때 서방구가 우주를 다그치는 것을 몇 번 들었다. 꼭 말이 통하는 큰 아이에게 하듯이 말이다. 아기는 표현하지 않아서 별 생각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다 느끼고 있다. 혹시 그래서 오늘 종일 아빠가 놀자고 불러도 가지 않은 건 아닌가 싶어 서방구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열 번이면 열 번, 백 번이면 백 번 다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면 그래서 이 시기의 육아가 환장할 노릇이지 않나 싶다. 위험한 행동을 보고 내 가슴이 철렁해도 아기에게 그것을 전가하지 않으려 해야 하니까. 열 번 말해도 못 알아듣는 것같이 행동해도 계속 반복해서 처음인 듯 말해줘야 하니까. 짜증을 내고 우는 아이에게 나도 똑같이 반응해서는 안되니까. 이 모든 게 아기의 본심이 아니라 표현할 줄 몰라서 그런다는 것을,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 튀어나오는 화를 누르고 다시 기억해내야 하니까.


내일 부디 다정한 부자지간이 되어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혹시나 내가 나가려는데 많이 울면 그냥 데려가야지 뭐. 별 수 있나. 아무튼 설렌다. 그 친구를 만나러 내가 가는 것은 참 오랜만인 일이라. 어떤 하루가 될까,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궁금하다. 얼른 자고 일찍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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