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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5월 10일 완벽한 날씨

20개월 4일

by 마이문

잠들기 전 우주가 난장을 피우는 바람에 마음이 꽉 막혀버렸다. 막판에 내가 긴장을 늦춘 탓이다. 회식 때문에 서방구가 늦어서 오늘 종일 혼자 애썼으니 친구와 카톡을 좀 하고 있어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우주는 자기 말도 듣지 않고 반응도 늦는 나를 계속 참아주다가 꾀를 내어 자러 가고 싶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먹지도 않을 우유를 달라고 해서는 바닥에 뿌리고 몸을 적셨다. 다 정리하고 몸도 다시 씻기고 자러 가자고 하니 아빠를 찾기에 되려 오지 않는 서방구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언제 오냐고 다그쳤다. 다 내 탓이긴 한데 그렇다고 내가 뭐 그렇게 크게 잘못했나. 오늘 진짜 멋진 하늘을 원 없이 올려다봤으니 낮과 밤의 내가 서로 퉁쳐주자. 그럼 꽤 괜찮은 하루가 된다.


집에 있으면 우주가 자꾸 뽀로로와 타요 만화를 켜달라고 한다. 심심한가. 그래서 조금 보여주고는 얼른 옷을 입혀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래서 아침에도, 오후에도 밖에서 보냈다. 내일부터는 제한을 좀 더 걸어야겠다. 아무튼 우주 덕분에 점점 짙어져 가는 나무의 색과 파랗고 청명한 하늘을 보며 많이 걸었다.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고 공원으로 가서 육교 엘리베이터를 한바탕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침의 코스. 오후에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마트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으로 우주가 집에서부터 놀이터까지 스스로 걸어갔다. 걷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단지 내에 조성된 쉼터로 들어가 벤치에 앉아보기도 하고 돌길을 걸어보기도 하는 게 너무 웃겼다. 우주도 이 계절이 좋은 걸까. 겨울에는 나가자고 해도 싫다고 하는 날이 많았는데. 어쩌면 나보다 더 민감하게 날씨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지 않고 계속 놀겠다는 우주와 씨름하다가 잠시 부엌 환기를 위해 창을 열었는데 시원하고 맑은 바람이 순식간에 휘잉 들어왔다. 우주도 그 바람을 맞더니 환하게 웃었다. 방에 데리고 들어가서 창을 조금 열어주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분 좋을 때 하는 소리를 계속 냈다. 비행기가 여러 대 지나가고 버스도 계속 정류장으로 들어오고 거기에다 달까지 창의 끝에 왔다. 우주의 행복 버튼이 도대체 몇 개였나.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한참 봄밤을 만끽했다. 기온도 미세먼지 농도도 바람의 습도도 완벽한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오늘 밤 창문을 열어 본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덕분에 우유 사태의 분노를 조금 진정시킬 수 있었다.


내일은 영상을 덜 보여줘야지. 집에서 재미를 찾아봐야지. 요즘 우주가 밥을 잘 안 먹으니까 내일은 특식으로 토마토 파스타를 해줘야겠다. 겨울이 끝나서 가동을 중단했던 가습기를 다시 켰는데, 우주가 오늘은 코 때문에 고생하지 않고 아침까지 잘 잤으면 좋겠다. 벌써 내일이 수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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