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월 17일
친구를 만나러 다녀왔다. 친구는 아기를 낳은지 이제 백일이 다 되어간다. 신랑이 코로나에 확진되는 바람에 친정에 내려와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했었다. 친정은 우리 교회 목사님 댁이다. 친구가 우리 목사님의 셋째 딸이다. 중학교 2학년 때였나. 어릴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 새로 부임해오신 목사님의 딸로 처음 만난 친구는 교회에서만 만나다가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3학년 때는 같은 반이 되어 엄청나게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자리도 바로 옆 분단이었으니 우리 주변으로 앉은 친구들을 모아 교회에 전도하기도 했다.
우주의 눈매가 서방구를 닮아서 어딜 가나 아빠랑 똑같다는 이야기만 듣는데, 친구는 우주를 만나자마자 힘을 주어 말했다. "선우랑 똑같이 생겼어." 아무리 봐도 어디가 오빠를 닮았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역시 내 친구다. 나도 우주 얼굴에서 나를 많이 본다. 억지로 찾아내서가 아니라 코와 입은 날 닮아서 내 어릴적 얼굴이 보일 때가 많다. 그렇다고 설명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뭔데) 아니라고 한다. 나는 내 얼굴이 보이는데 자꾸 아니라는 말을 듣는 기분은 안겪어보면 모른다. 그것도 너무 귀엽다는 말과 함께. 그러니까 귀여운데 널 닮아서는 아니라는 뜻인가. 면전에서 침을 맞으면 비슷한 감정이 들까 싶다. 친구는 아마 나와 같은 시선으로 우주를 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친구의 아기는 우주처럼 엄마의 몸에 계속 매달려 있었다. 누워서 자려하지 않는 아기를 보니 우주도 내내 내 몸에 붙어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열이 많아 뜨끈뜨끈한 것도, 몸무게가 같은 월령에 비해 덜 나가서 가벼운 것도 우주랑 비슷했다. 당연히 친구와 길게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처음 육아의 세계에 들어왔을 때, 나와 우주를 보러 친구들이 아기를 데리고 오면 얼굴 도장만 찍고 종일 서로의 아기를 케어하다 만남이 끝나는 게 너무 마음 쓰이고 아쉬웠었다. 친구도 그때의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저녁으로 떡볶이를 먹으며 오늘 만나서 대화도 제대로 못했다고 하길래 그래도 이렇게 같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으로도 성공이라고 말해줬다. 얼굴을 보았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우주는 아기를 내가 안아볼 수 있도록 허락하면서도 주시했다. 한참 보다가 아기를 내려놓으라고 손짓하기도 했다. 누워있는 아기 머리맡에서 움직이다가 무릎으로 머리를 쿡 찍어버려서 아기가 크게 울어버리자 놀라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다음부터 그런 불상사는 내가 잘 보고 있다가 미연에 방지해야겠다. 집이 더워서인지 심심해서 그런지 여러 차례 나가자고 해서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투어하고 주차장도 몇 번 돌았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눈이 한껏 풀린 채로 졸려했다. 식사를 마치고 부리나케 짐을 챙겨 나왔다. 그렇게 일찍 잠들었다면 참 좋았을 테지만, 집에 돌아와 할아버지와 그리고 이모와 신나는 시간을 늦도록 보냈다.
일찍 자려고 했는데 목요일에 다시 짧은 서울 여행을 떠나보려고 숙소를 찾다가 열두시가 넘어버렸다. 반나절 호캉스 같은 상품도 있던데. 한 시간을 검색하다 결론은 버스로 왕복하고 숙박은 하지 않기로 정리했다. 왜냐면, 지출이 너무 크다. 예정에 없던 지출일수록 신중하자. 하마터면 흥분해서 큰 돈을 쓸뻔했다. 그럴거면 피곤해 죽겠는데 한 시간이나 뭐하러 검색한 건가. 들뜬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히는데는 유용했던 것 같다. 사실 이제 너무 졸려서 내가 뭐라고 쓰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자자. 내일은 다시 집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