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를 수 없는 힘에 의해 우리는 모두 우주와 동시에 기절했다. 아침 일찍부터 시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가느라 서방구는 많이 힘들었어도 나는 오늘은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선잠에 우주가 잠든 걸 확인하고도 일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이 확 달아나듯 깨버려서 보니 3시 20분이다. 서운하다 생각했던 일들을 정리해서 카톡으로 보내라 했던 문자에는 3일 만에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답장이 돌아와 있었다. 만나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일단은 성공이다. 소책자 한 권이 나올 법 한 분량으로 충고와 화가 난 이유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정리해서 보냈는데 그럼에도 이해하지 못하고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던 동생이었다. 결국 나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정리해서 보내보라고 했는데. 못 보낼 줄 알았다. 정리하다 보면 할 말이 없을 거거든. 그래도 했던 말의 반복이 아니라 시간을 달라고 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받아들이든 내치든 결정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당연하다.
며칠 간의 감정 소모가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볼 것도 없는 핸드폰을 자주, 의미 없이 들여다보았다. 우주와 있다가 정신 차리고 보면 우주는 계속 나에게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는데(물론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고 딴생각으로 멍한 상태가 여러 번 발견됐다. 자주 그 동생에 대해서 서방구에게 얘기를 꺼냈다. 자신이 경험해 본 일에 대해 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친구의 속내를 받아주지 못했다. 나는 쏟아낼 것을 다 쏟아냈으니 가벼운 줄 알았는데 아직 뭔가 남은 것처럼 속이 불편하고 자주 이 일을 떠올리고 있다. '조금 부드러워질 걸 그랬나, 동생이 하고 싶다던 얘기를 먼저 들어줄 걸 그랬나?' 싶다가도 '아니 도대체 얼마나 더 잘해줘야 하나, 누구라도 해줘야 하는 말이었다.'. 그런 생각도 들고. 내게 남은 불순물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난제다.
7시에 시부모님과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떠났던 서방구에게서 일찍 진료를 마쳤으니 예정대로 올라와서 같이 점심을 먹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아침 먹고 놀다가 응가 타임 후에 잠을 잘 것 같더니 안 자고 다시 거실로 나온 우주도 서울까지 가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미션을 수행하듯 짐을 싸고 우주와 나 모두 옷을 갈아입고 시간이 촉박해서 유모차를 밀면서 역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억억 소리가 났다. 덥긴 하지만 그래도 달릴 만해서 다행이었다. 양복 차림으로 역 앞에 줄 서있던 한 무리를 지나며 그 무리 곁을 지나는 나와 우주의 모습이 드라마나 그림의 한 장면으로 써도 될 만큼 이상한 그림이라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간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쓴다는 건 당연한 일인데 나는 왜 순간 위축되었는지 모르겠다.
기차에서 내릴 때 어떤 분이 유모차를 선뜻 들어주시겠다고 했다. 그렇게 스치듯 받은 도움은 보답할 수 없어서 다음에 다른 기회에 다른 사람에게 갚아야 한다. 그러면서 세상은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 갚을 일이 생긴다면 좋겠다. 역까지 나와있는 서방구를 따라 우리 차에 올랐다. 우주는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잠이 들었고, 내린 후에도 내 품에서 자다가 사랑하는 엘리베이터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그럴 때는 피곤함도 잊고 깨자마자 신이 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63 빌딩의 59층에 있는 식당에 갔다. 코스요리를 먹었다. 지난번 서방구의 친구 결혼식에서 처음 먹어보고 오늘이 내 인생 두 번째 코스요리였다. 말 한마디, 몸짓 하나하나가 우아한 스텝들을 보면서 여기에서 일하려면 손 끝까지 각이 살아있어야겠다 생각하며 속으로 연신 감탄했다. 나에게는 없는 모습이라서 신기했던 것 같다.
전망이 끝내주는 창가 자리에 앉아서 아무 거리낌 없이 모든 것을 누렸다. 우리나라 지도가 빨갛게 물든 선거 결과에도 (본인이 원하던 바가 이루어진데 대한)기쁨보다는 의심으로 잔뜩 불만을 품은 아버님과 그게 싫어서 자꾸 언성이 높아지려 하는 아들 서방구 사이에서 나는 귀를 닫고 우주를 먹이는 일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에 열중했다. 이런 걸 또 언제 먹어보겠나. 아니 또 먹는 일이 있다고 해도 63 빌딩에 와서 먹는 경험은 언제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테지. 원래는 점심 먹고 오늘도 다시 우리 집으로 같이 갔다가 하룻밤 더 지내고 내일 다 같이 대전에 내려가기로 했는데 의사 소견을 듣고 심난하시기도 하고 우리 집 안방을 쓴다는 게 영 미안하고 불편하기도 하셨던 아버님은 집에 가서 쉬고 싶다고 하셨다. 영등포역에 내려드리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반나절,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신 게 나는 괜히 들떠서 신났었는데. 어제 미처 내드리는 걸 깜빡한 새우전을 아침에 부쳐놓고 나오며 저녁에 가질 맥주타임을 기대했었는데. 아쉽지만 그래도 또 휴가를 갑자기 얻은 기분도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잠이 든 우주에게 오늘 하루는 먹기만 한 날이 되었으니 그는 카트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집 앞에 도착해있는 새 반바지를 각자 입어보고 사이즈를 체크하고 서로 바꾸는 게 좋겠다는 것까지 확인한 후에 우주의 천국 이케아로 향했다. 내가 갈 때마다 왜 두세 시간 씩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지 서방구는 오늘 찐으로 경험했다. 가는 길의 모든 흥밋거리를 탐구하는 우주 뒤를 졸졸 따르는 역할은 서방구에게 맡기고 살 것들을 카트에 담았다. 배가 너무 고파져서 집에 오자마자 저녁을 차려 먹었다. 어제 시부모님을 위해 만든 저녁과 부쳐둔 새우전이 있어서 지체 없이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심지어 된장찌개는 내일 아침까지도 커버 가능하다.
서방구는 두 시간 가까이 설거지 지옥에서 헤매고 나는 우주와 시간을 보냈다. 1박 2일로 짤막하게 대전에 다녀올 짐도 대충 챙겨두었다. 우주를 재우러 들어가서 육퇴 후 막걸리를 먹자며 결의를 다지던 우리는 그렇게 꿈나라로 다 같이 떠났다. 잠에서 깬 후에 가글을 하다가 문득 우주가 내 안경을 볼 때마다 잡아채던 시절이 떠올랐다. 안경이 부러질까 두려웠지만 너무 귀여웠는데. 요새도 가끔 잡아채긴 하지만 그저 안경을 빼내는 것 자체가 즐거웠던 그때 그 눈빛이 생각난다. 아, 다 지나간다. 우주와의 순간을 더 찐하게 누려야만 해.
사촌동생과 씨름하던 며칠을 지나 보내고 관계에 대해 오랜만에 생각했다. 나는 서방구나 가까운 가족들이 아닌 타인에게 언제 서운함을 느꼈나. 자잘한 것은 비교적 최근에도 느꼈지만 그 정도는 마음 상태를 객관적으로 살피면 금방 털어버릴 수 있는 크기라 넘겨두고. 6년 전쯤 친한 언니와 친구에게 느꼈던 서운함이 내 인생 통틀어 가장 크고 오래 묵혔던 마음이었다. 그마저도 앉혀놓고 풀어보자는 말을 꺼내기까지 망설이고 또 망설여 결국에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고 다행히 시간이 흐르며 마음이 씻겨 내려갔다. 서운함은 내 것이라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최대한 혼자 푸는 사람이라 사촌동생의 태도가 더 괘씸하고 화가 났던 것 같다.
대전에 살 때 근거리라서 이어지던 관계들이 이곳에 올라오며 물리적으로 끊어진 게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이 아닌 타인과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일이, 육아하는 내 일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몸소 느끼면서. 아마도 대전에 살았으면 여러 관계에서 오는 감정선이 아무래도 여기에서 보다는 훨씬 자주 나를 덮치지 않았을까. 다행이다. 이래저래 참으로 다행이다. 다른 육아인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주가 돌이 된 후에 자주 서운했다. 아까 말한 자잘한 것들에 해당하는. 그래도 작년에는 우리 집에 사람들이 한 번씩 찾아와 주었는데, 한 번씩만 찾아오고 그 뒤로는 발길이 끊겼었다. 신생아 시절의 것과는 다른 주제로 극한에 치닫는 육아 한 복판에서 아무도 나를 돌아봐주지 않는 게 서운했다. 그때는 곱씹다가도 나를 찾아주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는 생각으로 서운함을 달래곤 했다.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모두가 힘든 삶을 사는 지금, 나를 한 번이라도 찾아와 준 사람들에게 서운하다고 생각하는 건 이기적인 일이다. 나 또한 사는 게 힘들어서 그들이 짊어진 무게를 돌아봐주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여기까지 생각하는데 오래 걸렸다. 그만큼 감정적으로 예민한 상태였다. 그러니 근거리에 살았다면 서운함을 달래볼 겨를도 없이 거기에 잠겨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말도 못 할 거. 담아둔 서운함이 얼굴에 드러나고, 행동에 드러나서 우주와 보내는 시간에 밀려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또, 다행이다. 그래서 다시 사람들이 떠올랐다. 보고 싶고, 마음을 전하고 싶다. 더 잘해야지. 서운해 말고, 사랑해야지. 관계 속에서 과하지 않은 적당함의 미덕을 깨달아야지. 오늘 내 유모차를 들어주신 귀인이 나에게 더 다가와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