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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6월 5일 갑자기 서늘

20개월 29일

by 마이문

밤사이 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최고 기온으로만 따지면 32도에서 22도로. 푹푹 찌는 여름의 더위를 맛보기도 전에 불타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타들어갈 것 같았던 5월이었다. 올여름은 꼼짝없이 죽었구나 싶었는데. 맨살에 느껴지는 찬 바람에 잠시 희망을 본 듯 마음이 가라앉았다. 갑자기 서늘해진 이 날씨가 더 반가운 이유는 내일모레 제주로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우주랑 이 더위에 바깥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날짜를 너무 잘못 잡았구나 하며 한낮에는 나가지 말고 숙소에 박혀있자고 말했었다. 그런데 예보에는 이번 주 내내 흐리고 선선한 날씨가 떠있다.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덕분에 어떤 옷을 챙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난감하지만 뭐, 다 챙겨보면 되겠지!


날씨는 선선하지만 아무리 창문을 열어두어도 실내 온도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단열이 잘된다고 봐야 하나, 원래 실내 온도가 한 번 올라가면 이렇게 떨어지기 어려운 건가. 이유는 모르지만 4월부터 관찰해본 결과가 그렇다. 하루 종일 거실과 우주 방 창문을 열어두었다가 24도까지 내려간 것을 확인하고 다시 문을 닫았는데 우주랑 같이 기절했다가 너무 더워서 깨보니 온 집안이 27도가 돼있었다. 얼른 에어컨을 켜고 양치하고 일기를 쓰려고 앉았다. 내일이면 매일(양심상 그렇지는 않지만) 일기를 쓰기로 한 지 만 4개월이 된다. 나는 무엇을 얻었나? 생각해보면 얻은 것을 찾아낸다는 게 웃긴 기간이다. 여전히 이게 맞나, 그런 생각만 한다.


일기를 여기다 쓴다는 건 솔직한 마음을 거르고 덜어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어제 일기는 발행하지 못하고 서랍에 저장했다. 일기를 여기에 매일 쓰는 게 맞나 싶었던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만 있다가 불쑥 큰 주제로 등장하게 된 계기다. 곱씹어 볼수록 기분 나쁜 말을 들었는데 여기에 적기는 좀 그렇다. 어쩌다 당사자가 볼 수도 있고 괜히 그렇게 적었다가 불특정 다수에게 옹졸한 사람으로 보일까 그것도 두려우니. 웃긴 것은 사실 어차피 5명 남짓 한 독자분들이 계실 뿐인데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늘 감사합니다. 별일 없는 일상을 읽어주시고 라이킷을 꾸준히 눌러주시는 분들 덕에 큰 힘이 납니다.) 그럴 시간에 그냥 쓰자는 결론이 또 난다. 조금 덜 솔직한 일기라도. 그냥 쓰자.


오늘 아침을 먹고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 우주는 칭얼대다 자기가 먼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꾸벅 인사했다. 인사하면 집에 간다는 걸 알고 머리를 굴려 그걸 이용하는 우주가 너무 웃겨서 우리 모두 한바탕 웃었다. 잠깐 그러고 말 줄 알았는데 진심으로 집에 가고 싶어서 문 앞에까지 나서서는 눈치를 계속 줬다. 급하게 짐을 챙겨 나오느라 또 이것저것 두고 나왔다.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는 바람에 잠들기엔 애매하게 배가 고팠는지, 챙겨 나온 빵 봉투를 유심히 보던 우주는 스콘 하나와 우유를 뚝딱 해치우고 집에 거의 다 와서야 잠들었다. 다행히 그대로 집으로 옮겨 재우는 것도 성공. 시간을 재보지 않았지만 오래도록 푹 잤다. 덕분에 조용히 점심도 해결하고 우리들의 블루스도 봤다. 영옥이가 울면서 속상함을 토로할 때는 우리도 같이 눈물이 났다.


드라마가 마음을 자꾸 쿵쿵 친다. 내용이 슬퍼서 그럴 때도 있고 내 현실에서는 드라마 속의 따뜻함을 찾기가 어려운 게 씁쓸해서 그럴 때도 있다. 드라마를 봐야만 따뜻해지는 게 가끔 슬프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따뜻한 온기를 전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내 모자람으로 잘 전해지지 않았던 경험이 쌓이니까 나도 적당히 미지근하게 살게 됐다. 전에는 받고도 소중한 줄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준 게 따뜻함인지 내 욕심인지 이제는 모호하다. 표현 방식에 따라서 상대에게 따뜻함으로 닿기가 어려웠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나는 남에게 따뜻함을 무제한으로 전할 만큼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한몫했겠지. 게다가 지금은 쥐어 짜낸 따뜻함을 우주에게 주고 나면 남지를 않으니.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는 원대한 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다만 가끔 기도한다. 언젠가 어딘가에 따뜻함이 필요할 때 그 자리를 나도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리 전이라 입이 제대로 터져서 우주 저녁을 먹임과 동시에 서방구가 구워 나르는 양념갈비를 먼저 와구와구 먹어 치웠다. 미친 듯이 먹다가 고기가 3점 남았을 때 정신이 번쩍 들어 나머지는 서방구에게 양보(?)했다. 사실 더 먹고 싶은데 아까 나는 많이 먹었으니 세 개 다 먹으라고. 생리 직전 일주일 간의 소화 능력은 정말 놀랍다. 입부터 장까지 뚫려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먹는 족족 들어간다. 그렇게 말했더니 소화 불량도 없냐고 서방구가 물었다. 없다. 성장기의 그것과 비슷하다. 몸이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나보다. 시도 때도 없이 눕고 싶고 머리만 닿으면 잠들기 바쁘다. 많이 먹고 많이 자야 살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결국 또 우주 곁에서 기절했다. 오늘은 좀 빨리 깨서 1시 반이었는데. 지금 2시 반이 되었으니 고민을 또 해봐야지. 짐을 조금 싸고 잘 것인가 일단 잠이 올는지 누워 볼 것인가. 아마 누워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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