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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6월 15일 오랜만에 시원한 비

21개월 8일

by 마이문

사촌언니네 집에 놀러 갔다가 낮잠을 건너뛰는 바람에 돌아오는 길에 밤잠에 돌입한 우주가 갑자기 서럽게 울며 깼다. 우주를 안고 달래다가 우주가 아까 언니네 둘째 손목에 있던 알록달록 팔찌를 뺏으려다 나에게 제지당하고 한참 동안 서러운 울음을 꺼이꺼이 토해내던 것이 생각났다. 꿈을 꾼 것일까. 그때 그 울음과 지금의 울음이 관련이 있을까. 오랜만에 우주의 긴긴 울음을 받아내며 그치지 않을까 겁이 났다. 다행히 우유를 마시고 진정이 됐다. 그리고는 다시 자겠다고 해서 침대에 누워 우주 배를 문질러주었다. 내 불안도 조금 잠잠해졌다. 가만히 우주를 바라보고 있으니 혼자서 전쟁을 치르던 때가 생각났다. 이유 모를 울음이 잦아서 불안이 가시지 않던 날들도 지나갔고, 하루 종일 껌딱지처럼 붙어서 짜증내고 징징대던 날들도 지나갔다. 받아내고 버텨내느라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어디에 풀어야 할지 몰라서 혼자 많이 울었는데. 어느샌가 우주가 자라고 우리가 서로 소통하면서 그런 날들이 다 지나갔다. 단단하게 서서 무너지지 않으려 애쓴 덕에 내 마음도 평화를 감사히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우주를 다시 재우기 전까지 2주 전 나에게 서운한 게 있어서 풀고 싶었다던 사촌동생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거짓말 안 하고 하루 종일 생각났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심했나 싶어서 그런 줄 알았다. 머리를 굴리고 굴려 심하지 않았다고 나를 다독였다. 그다음에는 화를 냈다는 것 자체가 틀려서 못 견디겠나 싶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결론이 났다. 그랬는데도 자꾸 떠올랐다. 설거지하려고 싱크대 앞에 섰더니 더 생각나서 드라마를 켰다. 아니 그랬는데도 대사의 틈을 비집고 또 떠올랐다. 그러다 우주가 깨서 정신없이 달래고 다시 재우려고 곁에 누워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지난날들을 떠올리다 순식간에 모든 게 정리됐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화가 났던 거다. 내 연약함이 우주를 해치지 않게 하려고, 육아의 세계로 들어와 다른 국면을 맞이했던 부부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1년 반 동안 애쓰고 애써서 얻은 평화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 평화에 1도 일조하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내가 혼돈을 지나는 동안에도 내 시간을 쓰고 내 마음을 얻어간 사람이, 감히 감정을 들이밀고 찾아와 내 평화를 깨려고 한 게 화가 났던 거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눈물이 났다. 우주의 울음에 동요했던 마음이 씻겨 내려갔고, 돌보지 못했던 화도 사그라들었다.


휴가가 끝나자마자 서방구가 출장을 떠나는 바람에 육아와 집안일에 혼자 파묻히게 된 게 영 불만이었는데. 육퇴 후에 혼자 있으니 시간을 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생각이 정리되는 기회를 얻기도 하는구나. 오늘은 우주가 일찍 밤잠에 든 덕분에 며칠 만에 일기도 쓴다. 과연 오늘의 정리는 진짜일지 내일 두고 봐야 알겠지만 오늘은 가볍게 잘 수 있을 것 같다. 되도록이면 감정은 잔잔하게 살고 싶다. 우주가 기대면 포근하다고 느낄 마음을 주려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지나가는 우주의 시간을 기억하려면 꼭 그래야만 한다. 그래서 남에게 휘둘릴 감정은, 적어도 지금은 없다. 휴! 드라마나 마저 보고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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