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개월 9일
오늘은 코엑스 나들이가 계획되어 있었다. 며칠 전 어린이집으로부터 24개월 미만은 소풍에 참여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23개월 아기의 엄마인 친한 언니가 속상함을 전해왔다. 친구들이 다 떠난 어린이집에 혼자 앉아 있을 딸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짠했던 언니는 휴가를 내고 아쿠아리움에 가기로 마음먹었고, 나에게 함께 가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오케이! 주변에 아기가 있는 사람이 만남을 요청해오면 일정이 없는 한 무조건 만나기로 한다. 우주가 다른 아기를 만날 수 있어서 좋은 건 둘째 문제고, 우주를 키워보니 아기의 시절이 너무 찰나인 것을 알게 되어 그 찰나를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일 붙어사는 내 아기도 이렇게 금방인데. 어쩌다 한 번 보는 다른 아기들은 정말 쑥쑥 자라 있다. 지나가버리기 전에 얼른 봐야지. 게다가 언니랑은 죽이 잘 맞아서 맘이 편안하고 좋다. 남편들 없이 우리끼리 차를 몰고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는 일정은 처음이라 모험하는 기분이 들어서 또 좋았다.
어제 낮잠도 자지 않고 밤에도 낑낑대며 자주 깼던 우주는 오늘 하루 종일 피곤해하고 안아달라고 울 것이 분명했다. 종일 안게 되면 너덜 해질 팔뚝을 보호하기 위해 아주 오랜만에 힙시트를 꺼내 실었다. 우주는 아무리 힘들고 불편해도 안아주면 만고땡인 아기라 그래도 어디 나가기가 수월하다. 코엑스에서 점심 먹을 식당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길 한복판에 드러누워 생떼와 울음으로 자기 존재를 알리던 한 아기가 생각난다. 우리가 그 근처를 지나쳐 다른 곳에 들렀다가 다시 돌아와서 웨이팅이 있길래 기다리다가 순번이 되어 식당에 들어갈 때까지, 그 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울었다. 엄마가 얼굴이 벌게져서 진땀을 빼고 있었다. 혼자 오셨나 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빠도 한껏 경직된 얼굴로 함께 있었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까. 우주를 키워보기 전에는 얕은 육아지식을 동원해서 '아기가 평소에 얼마나 엄마랑 유대가 없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안다. 어떤 아기는 그저 성향이 그래서 그렇다는 것을. 아무튼 내 예상은 적중했고 우주는 아쿠아리움의 물고기들도 내 품에 안겨서 보고, 코엑스를 걷는 내내 나에게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는 폭 잠이 들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은 몇 안되지만 내가 가본 아쿠아리움 중에서 가장 재밌었다. 성인인 내가 봐도 흥미로웠으니 앞으로 우주가 크는 동안 몇 번은 더 와도 되겠다 생각했다. 아쿠아리움은 수조 안의 구조물이나 바깥 인테리어로 정해진 테마를 구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그간 봐온 곳은 테마 자체도 부실하고 구현하는 방식도 조악해서 실망스러웠는데 코엑스는 테마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구역은 집 내부를 꾸며놓고 그 사이사이에 물고기를 배치했던 곳이다. 책장 사이, 냉장고 속, 세면대 안쪽, 자판기의 광고판 등등 일상에서 볼 법한 곳에 어항이 들어있으니 꽤나 신선했다. 내 일상에서 물고기는 얼마나 가까운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사실 물고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우주를 데리고 아쿠아리움에나 와야 생각하는 정도였는데. 해양 생물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음을 알리는 테마가 이어지니 강이나 바닷속 생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보자는, 아주아주 체험학습에 걸맞은 깨달음이 일었다.
아기들을 모두 재우고 커피 마시며 수다 한 번 떨어보자는 우리의 계획이 아주 극적으로 성공에 도달했다. 점심을 먹이고 언니의 아기는 유모차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졌고 우주는 내 품에 매달려 이곳저곳 구경하다가 스르르 눈이 감겼다. 우주를 유모차에 내려놓는 데 성공한 후, 주문한 커피를 받아 1층 밖으로 나갔다. 바람이 선선했다. 무역센터 건물 그림자가 크게 드리워진 앞마당에 앉아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시원했는지 우주도 한참 쿨쿨 잘 잤다. 코엑스 앞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다들 무슨 사연으로 여기에 왔을까 궁금했다. 그럴 땐 에디터가 되어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해보고 싶다. 기다란 화단 앞에 앉아있었는데, 우리가 있는 동안 옆자리에 다양한 사람들이 앉았다 갔다. 페어에 왔다가 돌아갈 생각을 하니 물건을 잔뜩 산 것이 후회되시는 할아버지. 방송일을 하는지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던 아저씨. 우리처럼 큰 소리로 수다를 이어가던 할머니들. 누군가를 기다리며 어디에 있는지 전화로 체크하던 사람. 그리고 사람들은 스쳐 지나며 우리를 볼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사람들 틈에 산다는 건 피곤하고도 재밌는 일이다.
일정을 마치고 하남에 있는 언니네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헤어질 예정이었다. 출장지에서 돌아오고 있는 서방구에게 수서까지 더 올라와 달라고 요청해서 차로 픽업한 다음 하남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먼저 출발한 언니에게 무거운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아기가 38.9도까지 열이 있다는 소식과 함께. 하루를 신나게 보내고 돌아가서 아기가 아프면 마음이 많이 쓰일 텐데. 무사하길 바라며 우리는 집으로 차를 돌렸다. 차 안에 있는 게 지루했던 우주와 대환장 파티를 보내며 집에 도착해서 치킨을 먹고 씻고 다 같이 누웠다. 오늘은 작정하고 다 같이 기절하기로. 잠이 안 올 것 같았는데 어느샌가 잠에 빠져있었나 보다. 눈 떠보니 새벽 4시였는데 일기를 다 쓰고도 아직 쌩쌩하다. 다시 누울까, 아니면 요가를 할까. 아무튼 오늘 너무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