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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Jun 29. 2022

22년 6월 28일 찬란한 하늘은 창 너머로만 보자

21개월 21일

60분짜리 요가 홈트를 20분밖에 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그리고는 졸음이 쏟아진다. 우주는 종일 이모랑 놀지 못한 게 아쉬워서 눕지 않고 결국 이모를 끌고 방에 들어갔다. 저 둘이 다시 잠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내가 먼저 잠들 것 같다.


우주는 이른 아침에 잠시 깨서 우유를 마시고 다시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매일 늦게 자니까 피곤할 만도 하지. 친정 살이의 최대 단점이다. 우주의 생활 리듬이 완전히 붕괴된다. 늦게 일어나서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엄마가 구워준 감자와 나 먹으라고 내준 카프레제 샐러드의 핵심인 치즈와 토마토를 뺏어 먹고 잘 것처럼 굴다가 또다시 일어나는 아주 정신 사나운 오전을 보냈다.


월요 묵상 메이트인 교회 동생과 연락하다가 오늘 시간이 된다고 해서 집에 놀러 오라고 했다. 우주는 우리 사이에 껴서 같이 과자와 주스를 먹고서 낮잠에 돌입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수다 타임이 생겨서 너무 기뻤다. 동생은 지난주에 런던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이야기가 너무 듣고 싶었다. 유럽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해서 유럽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가 늘 고프다. 다녀와서 찍은 예쁜 사진도 보고 생생 후기도 들었다.


20대엔 자신을 위해 살아보지 못한 동생이다. 이제 막 시작해 본 혼자만의 인생 모험이 설렘으로 가득 차 있어서 나도 마음이 벅찼다. 듣는 내내 여행을 향한 갈망이 차올랐다. 사진을 참 잘 찍는 동생이라 여행 사진집을 내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했다. 한참 그 아이디어에 서로 의견을 보태며 오랜만에 희열을 느꼈다. 우주가 일어나면서 오늘의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우주에게 이른 저녁을 먹이고 다 같이 내 동생 빵집으로 놀러 나갔다. 우주는 종일 기다리던 이모를 만나서 행복해했다. 이모가 어찌나 좋은지 이제는 나를 이모라고 부르다 머쓱해하는 일이 잦다. 웃긴다 정말. 좁은 빵집에서 이것저것 먹고 한 시간 넘게 놀다가 집에 돌아왔다. 엄마가 다시마 면을 넣고 만들어준 열무 국수를 숨도 쉬지 않고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먹고 나서도 아무 문제없었는데 웬일인지 대차게 체한 것 같다. 배가 조이듯 아파서 눈을 떠보니 새벽 세시 반이다. 소화제를 먹고 다시 누웠다. 금방 괜찮겠지.


우주는 이제 세 단어 연결을 시작했다. '할비 집 지하주차장', '엄마 저기 가.' 하는. 본인이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즐겁고 뿌듯한 것은 표정만 봐도 알 것 같다. 게다가 우리 집에 있을 때보다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다양하니까 그것도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이 다양한 만큼 새로운 단어를 따라 해 볼 기회도 많다. 어른들끼리 대화하다 들려오는 단어를 혼자 읊조리거나 우주에게 하는 말 중에 굳이 몰라도 되는, 그러나 본인 귀에는 꽂힌 듯 한 단어도 꼭 한 번씩 따라 한다. 별 걸 다 따라 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우주의 식사는 보통 우주 낮잠 시간에 만드는데, 친정 집에는 에어컨이 거실에 하나뿐이라 여름에는 조용히 재워두고 요리할 수 있는 방이 없다. 꼼짝없이 거실에서 자거나 에어컨을 세게 켜고 끝방 문을 열고 재워야 한다. 그러니 음식 해 줄 시간이 없어서 계속 스트레스받고 아무튼 이래저래 맘에 걸렸다. 그러다 오늘 결심했다. 챙겨 온 레토르트 덮밥 소스를 미안해하지 말고 주기로. 어차피 제대로 못할 거 어영부영 신경만 쓰다가 이중으로 스트레스받지 말자고. 우주 밥에 열심을 내는 일은 다시 집에 돌아가서 시작하자고.


여기까지 썼는데도 속이 안 내려간다. 남은 유미의 세포들을 마저 보면서 풀리길 기다려봐야겠다. 오늘도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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