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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Jul 03. 2022

22년 7월 3일 여기는 필리핀인가

21개월 26일

일기를 며칠이나 못 쓴 것인가. 우주는 매일 밤 우주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이 좀 안쓰럽다. 어떤 기분인지 너무 잘 알아서 그런 것 같다. 원래 일정보다 앞당겨서 집에 돌아갈까 싶다가도 가봐야 서방구는 출장 떠나고 없으니 혼자 우주를 돌볼 일이 두렵기도 하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이번 주는 우주의 눈치를 살피는 한 주가 될 것 같다.


내일은 동생의 웨딩촬영 날이다. 너무 설렌다. 우주는 엄마와 아빠가 돌봐주기로 했다. 동영상으로 열심히 담아서 축하 영상을 만들어줄 생각이다.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잘 참았다. 결혼식이 코앞에 다가오면 그때 보여줘야지. 아니, 그전에 찍은 영상을 보내달라고 하려나...? 그럼 낭패인데.


금, 토, 일 2박 3일 동안 시댁에서 보냈다. 그것도 하루 더 지내기로 양보한 건데 어머님 아버님은 우리가 간다고 하면 못내 서운한 마음을 말씨에 내비치신다. 그러시면 나도 서운하다. 그래도 서운하단 말을 직접 하시지는 않으니 그 마음은 알아도 모르는 척 집을 나선다. 나는 해드릴 수 있는 만큼 했다. 시부모님께 충분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아버님의 수술이 생각보다 더 큰 수술이 될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전의 모 대학병원에서 2시간이면 끝나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었는데. 아산병원에서 모든 검사를 마친 지난 30일, 의사는 최대 8시간이 걸리는 수술이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수술 부위를 열고 나면 검사에서 알 수 없었던 다른 문제가 더 발견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수술 예정일인 20일은 서방구의 여름휴가가 있는 주다. 두 달 전에 친정 식구들과 날짜를 맞춰서 18~20일에 여수로 떠나기로 했었다. 수술 이야기를 듣고 여행을 취소할까 했는데 어차피 보호자도 1명밖에 못 들어가니 여행에 가지 않아도 집에만 있어야 한다고 서방구는 예정대로 가자고 했었다. 입원 날 서방구가 들어가 한 밤 보낸 후에 어머님과 교대하고, 수술 당일에 다시 교대해서 서방구가 입원실에 들어가는 걸로 정했다.


그런데 수술이 생각보다 심각하게 들리니 휴가를 그대로 가자고 할 수가 없었다. 마침 휴가가 잡힌 주에 아버님 수술 날이 들어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서방구를 방으로 따로 불러 그냥 입원 내내 아버님 곁을 지키고 어머님은 집에 계시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고 말했다. 서방구도 아버님 말씀을 듣는 내내 맘이 무거웠는지 더 말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가고 싶다. 아버님이 편해서도 아니고 효심이 지극해서도 아니다. 나는 누군가 아프고 힘들 때 곁을 지키는 일에 재주가 있다. 감정적으로 남일에 크게 동요하지 않아서 그렇다. 그러니 아들인 서방구나 아내인 어머님의 마음보다는 감정을 덜 소모하면서 자리를 지킬 수 있는데. 우주가 있으니 그것도 못한다. 몸도 건강하고 시간도 많은데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힘이 쭉 빠진다. 그래서 자꾸 서방구를 뒤에서 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또한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아무튼 다시 엄마 집으로 돌아왔다. 우주는 이모를 다시 만나 엄청난 텐션으로 저녁시간을 보냈다. 밥도 많이 먹고 아빠랑 서방구가 시킨 짜장면도 옆에서 얻어먹고 우리가 시킨 샐러드도 탐을 냈다. 대전에 온 지 5일 만에 3킬로가 불어버린 나를 동생이 관리해주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셰이크를 먹는다. 몸무게 변화는 크지 않지만 한결 가벼운 것 같다.


나만큼 우주도 튼실해졌다. 하도 돌아다니면서 먹어서 얼마나 먹고 있는지 잘 먹는 건지 의문이 들었는데 꽤나 많이 챙겨 먹었나 보다. 다리가 땅땅해졌다. 말은 또 어찌나 늘었는지. 역시 언어 발달에는 말이 많은 어른들과 함께 있는 게 최고다. 별소리를 다 따라 하더니 이제 상태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우유를 다 먹고 '다 먹었네?' 한다. 무언가 제자리에 없을 때는 '없네?'라고 한다. 아니야를 시전 하는 우주에게 '뭐가 아니야!' 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 말도 앵무새처럼 따라 한다. 보통 우주를 단호하게 대해야 할 상황인데 웃겨 죽겠다. 아기는 어른들의 딱딱한 마음을 말랑하게 만들다 못해 녹아내리게 한다. 부정확한 발음으로 내는 지금 우주의 모든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싶다. 언젠가 사라질 소리들이니 벌써 애틋하다.


자기 전에 푸시업 자세를 하길래 따라 했더니 할아버지도 시키고 자기도 다시 자세를 잡아서 3대가 다 같이 한참 그러고 있었다. 우리만 시켜놓고 자기는 금방 안 하길래 '우주는 안 해?'물었더니 '해!' 하면서 다시 자세를 취했다. 웃긴 놈. 언제 저렇게 큰 걸까. 티키타카가 되다니. 내일은 뭐라고 종알종알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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