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문 Jul 16. 2022

22년 7월 15일 여름이 이 정도면 살 만하겠다

22개월 8일

서방구 없이 우주와 단 둘이 보낸 밤이었다. 야외 활동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 저녁 먹고 집을 나섰다가 두 시간 가까이 외출하고 돌아왔는데 우주를 매달고 다니느라 오히려 내가 운동하고 온 것 같다. 피곤해서 우주보다 먼저 잠에 빠졌다. 찰나의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보니 새벽 3시 20분이었다. 입 속의 텁텁함을 느끼며 자기 전에 양치를 했는지 떠올려보고 칫솔을 챙겨 우주와 멀리 떨어진 화장실로 향했다. 일기를 빠르게 쓰고 어제 못한 요가도 하고 잠깐 눈을 붙여야겠다.


오늘은 우주와 점심에는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고 저녁에는 오이 무침을 만들었다. 어린이 커트러리에 있는 작은 칼을 쥐어주고 토마토와 버섯, 오이를 썰어보게 했다. 옆에서 같이 썰고 있는 엄마의 칼은 재료를 슥슥 잘라내는데 왜 자기 칼은 해도 해도 안되는지 조금 의아해 보였지만 모르는 척했다. 썰면서 작아진 토마토와 오이를 집어먹는 우주가 너무 귀여웠다. 그런 건 알려주지 않아도 한다. 웃긴다.


파스타로 배를 채우자마자 잠이 솔솔 오기 시작한 우주 곁에 잠시 누웠다가 같이 기절했다. 우주와 낮잠을 내리 잘 수도 있을 만큼 깊은 잠을 깨운 건 냉장고에서 나를 기다리는 바질 페스토였다. 친구가 만들어준 건데, 대전에 놓고 와서 엄마가 어제 가져다줬다. 핸드메이드라서 얼른 먹어야 한다. 받은 지 2주가 다 됐는데 후기도 전하지 못해서 맘에 걸렸다. 아침에 사 온 호밀빵을 한 덩이 찢어서 페스토를 얹어 먹었다. 아, 이 친구는 얼른 퇴사해서 바질 페스토 사업을 시작해야만 한다. 집에서 만든 게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고? 심지어 바질도 직접 기른다.


호밀빵 한 덩이를 더 뜯어먹고  파스타를 만드느라 생긴 커다란 설거지들은 우주랑 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그것부터 해치우고 우영우를 시청하다가 얼렁뚱땅 3시간이 흘러버렸다. 우주가 4시 반쯤 깼는데 조금 놀다 보니 5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시간 참 빠르다. 하루를 버틴다는 생각으로 살지 않으니 더 빠르게 간다고 느껴졌다. 우주의 미니 카트가 우주의 땀 많은 손이 타서 쇠 냄새도 나고 도색도 벗겨지고 있어서 서방구가 카트를 새로 주문해뒀는데, 우주가 자는 사이에 도착해서 우주와 같이 언박싱 했다.


카트는 파란색을 주문했는데 재고가 없어서 초록색으로 온다고 했다. 우주는 파란색을 산 줄 알고 있었을 텐데, 기대했던 색이 아닌데도 우주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원래 있던 것들은 빠르게 버림받았다. 어느새 '엄마 카트'가 되어있었다. 밤이 되어서 파란색 카트가 생각났는지 그걸로 바꿔달라고 했다. 서방구에게 주문처를 물어보고 다른 곳에 새로 주문을 넣었다. 거기는 꼭 재고가 있길.


밤 산책에도 카트 두 개를 양손에 꼭 쥐고 나섰다. 길바닥에서 조그마한 카트를 밀고 앉았으니 사람들이 보고 웃으면서 지나갔다. 마트 카트 앞에 앉아서 미니 카트를 밀고 있는 모습이 안 웃길 수가 없지. 저렇게 좋을까? 그러니까 카트 같은 건 더 사달라면 계속 사주고 싶은 거다. 습기가 많이 가셔서 시원한 밤바람을 누리며 돌아왔다. 잠깐잠깐 마스크를 벗고 맑은 공기를 마셨다. 바닥의 개미가 무서운 우주를 안고 돌아오느라 어깨가 빠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밤 산책은 좋다.


산책에는 사실 목적이 있었는데 이루지 못했다. 다이소에서 내일 서방구의 생일 파티에 쓸 예쁜 촛대를 사고 싶었는데 없었고, 서방구가 부탁한 블랙박스용 고내열 양면테이프도 없었다. 수세미를 자주 갈아 쓰고 싶어서 진짜 수세미를 사려고 했는데 그것도 없어서 손뜨개 수세미를 세 개나 집어왔다. 주방에 넣어두려고 서랍을 열었더니 아쉽게도 집에는 뜨개질로 만든 수세미가 세 개 더 있었다. 다이소라더니. 없는 것만 쏙쏙 골라 찾아다닌 내 탓이지.


내일은 케이크를  와야 한다. 미리 주문한 풍선도 불어서 창문에 붙여야지. 서방구는 아버님을 병원에 모셔두고 언제 집에 돌아오려나. 아무튼 미리 설레는 하루다. 우주가 자꾸 뒤척인다. 에어컨 온도를  내려줘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22년 7월 13일 하루 종일 폭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