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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Jul 14. 2022

22년 7월 13일 하루 종일 폭우

22개월 6일

오늘도 또 역사적인 날이다. 50분짜리 요가 홈트 완주에 성공했다. 종일 깜깜한 날씨 덕에 우주가 3시간이 넘도록 푹 잤기 때문이고, 우주 낮잠 시간에는 나도 쉬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내 상태에 아주 적절한 플로우를 드디어 찾았다. 30분 영상을 넘어서 50분에 도전해본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 정도 되는데, 시간이 없어서 다 못하기도 했지만 시작한 지 20분이 되기도 전에 힘들어서 그만둔 일도 있었다. 스트레칭 정도의 동작으로 구성된 플로우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싶었는데. '전신 순환'이라는 제목에 끌려서 클릭한 영상을 마침 오늘 만난 건 또 다른 행운이었다. 10분 정도 숨을 고르고 본격적인 동작으로 들어가서는 천천히 호흡하며 양쪽 모두 합쳐 20분간 수련한다. 그리고 전체 동작을 빠르게 다시 반복하게 되는데, 이전에 부진했던 부분을 반복하면서 복습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스트레칭과 함께 마무리한다.


처음 요가 홈트를 시작했던 것은 우주가 4개월쯤 됐을 때였다. 유튜브에 산후 요가를 검색해서 만나게 된 채널인데, 산전, 산후 요가뿐만 아니라 요가의 기초와 다양한 용도로 구성된 루틴이 마음에 쏙 들었다. 무엇보다 멘트와 영상이 깔끔해서 요가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에는 15분짜리 요가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기가 어려웠다. 우주가 그만큼 자주 깼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고 요가할 때마다 깨서 울었는지. 그때의 나는 나에게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50분 홈트를 완주하다니. 이럴 때는 과거의 나에게 슬쩍 가서 미래에 일어날 희망적인 일들을 이야기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가를 자주 했던 것은 아니다. 몸이 충분하게 회복하지 못했던 6개월 이전에야 요가가 아니면 살 수가 없어서 자주 했지만 그 이후로는 정말 죽을 것 같을 때나 한 번 했다. 차라리 마사지를 받고 싶었는데 시간도 돈도 여유가 없으니 집에서 간단히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요가가 최고였다. 사실 그럴 때 요가를 딱 하면 몸이 찌릿찌릿 제대로 풀리긴 했다. 그럴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더 미루고 미루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3주 전쯤, 가끔 챙겨보던 서울 체크인에서 이효리가 했던 말에 잠자고 있던 열정이 고개를 들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요가의 어려운 동작을 해나가면서 정신도 함께 한계를 극복하는 것 같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정신이 한계를 극복한다...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수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를 가지기 전까지는 한계가 닥치면 피하는 삶을 살았다. 경영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공부도 안 하고 대충 다녀보다가 답도 없이 휴학을 2년 반이나 하고,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간다는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가지고 떠나서는 고작 4개월 있다가 일도 한 번 못 해본 채로 다시 집에 돌아오고. 27살에 처음 입사한 회사는 나름의 핑계가 있었으나 어쨌든 참기 힘들다고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완전히 맘에 들고 재밌는 일이 아니면 재빠르게 그만 둘 각을 성실히 재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은 달랐다. 안 맞아도, 힘들어도 물러서거나 피할 곳이 없었다. 그만둘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대신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그때부터 '버티는 힘'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안 맞으면 돌아서는 버릇을 고쳐야지 생각했다. 열 달의 임신 기간과 극한의 고통을 참아내는 출산을 지나면 그 '버티는 힘'을 조금이라도 얻지 않을까 기대했다. 이전보다 단단해져서 아기를 맞을 준비가 충분히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아로 들어가기에 충분한 힘이란 그 정도 이벤트로 얻을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임신은 고작 열 달이다. 출산도 길어야 이틀이면 끝난다. 버티는 힘은, 내 생각에, 적어도 1년 이상 매일 똑같은 일을 해야 마일리지가 1부터 쌓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전까지는 0이다. 힘을 준비하지 않고 입성한 육아의 세계에서 나는 고통을 크게 느꼈다. 육아가 엄마의 자아를 내려놓는 일이니, 나는 힘들면 도망치던 나를 내려놓아야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널브러져 있는 하루를 좋아하는 나를 내려놓아야 했다. 늦잠 자고 게으름 피우는 것이 주말의 쉼이 아니라 평일의 일상이던 나를 내려놓아야 했다. 남들은 자기 삶을 꾸리기 위해서 진작부터 했을 일을 나는 육아로 시작했다.


밤중 수유 2회를 동반한 13개월간의 모유수유도 지나고, 식재료 관리법도 모르는 요리 초보가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인 6개월도 지났다. 이제  밥알을 집어먹기 시작한  아기에게  줘야 할지 몰라서 볶음밥만 해대던 시절도 지나 벌써 우주가 22개월이 되었다. 지나온 시간의 기록이 무색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드는  아니라 자꾸 제자리에서 걷는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유아식 책을 샀는데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자꾸 밖에 나가고 싶고. 육아가 원래 그만큼 힘들고 어려우니 당연히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라 여기고 싶었다. 그러다가 이효리의 명언을 마주한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리프레시가 아니라 정신력을 다지는 일이구나. 명언을 듣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러나  되는 것을 쥐어짜서는 부족하다. 진짜 정신이 살아있어야만 한다.


 이후에 생각을 실행에 옮겨 볼 겨를없이 바로 대전에 내려갔었다. 집에 다시 돌아오기 직전에 분명히 일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었는데, 어제오늘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우주를 집안일에 초청하는 방법으로   일상의 한계를 넘었고, 우주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이상   없을  알았던 50분짜리 요가 플로우를 완주함으로     뛰어넘었다. 육아에서 해방되는 날이 오기 전에는 이런 기분을 누릴  없을  알았다. 심지어 다음 주에는 아버님의 수술 일정으로 서방구가 주말부터 일주일 내내 집에 없을 텐데, 대전에 내려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런대로 우주와  지내볼  있을  같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지내보면 정말로  정신이 가진 한계를 넘을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어제 사온 200미리 칭따오가 약간 아쉽도록 딱 좋은 밤이다. 내일도 우주랑 좋은 날을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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