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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Jul 20. 2022

22년 7월 19일 아침저녁으로 선선

22개월 12일

아버님 보호자로 서방구가 병원에 따라 올라가서 우주와 단 둘이 있지만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마음의 여유를 누리고 있다.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저녁 먹고 뒷정리까지 마치고서 밤 산책도 다녀왔다. 그리고 성실히 우주의 세끼도 차려내고 있다. 오래간만에 우주 옆에서 늘어지게 낮잠도 잤다. 2주 치 빨래가 기본으로 쌓여있던 빨래 바구니도 비웠다. 실화인가? 내가 하고 있지만 믿을 수 없다. 분명히 2주 전 대전에서는 다시 집에 돌아가면 어린이집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가자미조림에 성공했다. 흰 살 생선 요리를 해줘야 하는데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하지 못했다. 조리되지 않은 생선을 만져본 일도 거의 없어서 더 그랬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 김에 새로운 요리를 도전해보자 하고 식단표에 흰 살 생선 조림을 적었다. 장 보러 갔는데 쓸만한 생선이 가자미뿐이었다. 팩에 담긴 가자미가 손질이 된 놈인지, 내가 잡아 손질을 해야 하는 건지, 냉동을 그냥 살까, 누구에게 물어볼까, 내 질문을 어이없어하면 어쩌지. 그렇게 마트를 몇 바퀴 돌고 나서야 가자미를 카트에 실을 수 있었다. 안 데려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맛있었고, 우주도 너무 잘 먹었다.


지난 주말에 우주 친구 서윤이와 물놀이터에 다녀왔는데 우주가 꽤 잘 놀길래 오늘도 도전해보려고 아침 먹고 집을 나섰다. 미끄럼틀을 타고 싶어 해서 같이 탔는데 내 커다란 몸에 밀린 물이 우주에게 너무 거센 파도였는지, 들어간 지 5분 만에 물놀이터에서 탈출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우주는 잔잔한 물이 있는 수영장에서 튜브나 태워줘야겠다.


이 계절에만 할 수 있는 밤 산책이 너무 좋다. 5, 6월에 찾아왔던 폭염이 무색하게 기분 좋은 바람이 저녁마다 살랑거리는 7월 중순의 밤이 이어진다. 점점 더 많이 더워지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언제 또 열대야가 찾아올지 모르니 부지런히 나가야지. 오랜만에 우주가 씽씽이에 관심을 보여서 끌고 나갔는데 역시나 타지 않으려고 했다. 겨우 태워 놓으면 발을 전혀 구르지 않고 내가 미는 대로만 탔다. 당근에 팔까? 기다리면 타긴 탈까. 혹시나 킥보드는 타려나 싶어서 안장을 떼 줬는데 슬쩍 올라탔다가 앞으로 쓱 밀려나는 것을 보고는 얼른 도망쳤다. 짜식. 운동신경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우주는 그 대신 말을 엄청나게 잘하는 편인 것 같다. 조사를 구사하는데 능하다. 세 단어를 연결해 정확한 조사를 넣어 문장을 만들어 본다.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는데 어느새 혼자 배웠다. 오늘은 '처럼'을 사용했다. 조사가 가진 느낌을 알고 표현해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듯하다. 연상되는 단어를 찾는 것도 좋아한다. 최근에는 '상상 더하기' 노래를 들려줬는데 후렴에서 '눈 부셔, 눈 부셔, 눈 부셔, 이건 뭐!'부분을 기억하고는 조명을 켜고 눈이 부시면 눈을 가리면서 "상상 더하기!" 하고 말한다. 말하는 우주는 엄청 행복해 보인다. 눈이 반짝반짝 빛 난다. 잠에 들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우주랑 있는 게 재밌다. 가만 보고 있으면 웃기다. 저런 생명체가 세상에 있다니.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은 생각은 매일 해도 질리지가 않는다. 곤히 자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내일 눈 뜨면 또 조잘조잘 이야기하겠지. 나도 얼른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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