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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Jul 21. 2022

22년 7월 20일 뿌옇게 덮인 하늘

22개월 13일

서울에 왔다. 병원 근처 숙소에서 혼자 깨어있다. 우주를 재우고 마시자며 사온 맥주를 마시고 있다. 평소 같으면 잠든 서방구를 깨웠을 텐데 며칠 병실에서 쪽잠자느라 피곤할 것 같아서 그냥 뒀다. 우주가 오늘 활동량이 많지 않아서 숙소 앞의 석촌 호수 산책을 다녀오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때부터 비가 내렸다. 챙겨간 우산을 쓰고 약간만 걷다가 맥주만 사들고 다시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우주는 11시가 넘어서야 뒤척이다 간신히 잠이 들었다.


숙소는 이제껏 다녀본 레지던스 호텔 중에 가장 냄새가 없었다. 그야말로 무취다. 향도 없고 퀴퀴한 냄새도 없다. 너무 좋다. 여섯시 반 쯤 병원에서 서방구를 픽업하고 바로 저녁을 먹고 오는 일정이라 늦게 체크인 한 탓인지 뷰가 좋지는 않았지만 뭣이 중헌가. 여름 휴가를 통째로 반납했다가 이렇게 하루라도, 기분이라도 낼 수 있으니 좋다. 그리고 아버님 수술이 끝났다는 소식을,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듣게 되어 더 더 많이 좋았다.


우주의 낮잠시간에 맞춰서 출발해야 모두가 고생하지 않는 일정이 되었겠지만 처참히 실패했다. 졸려하는 우주와 사투를 벌이며 점심까지는 무사히 먹였는데 남은 짐을 더 싸고 집 정리까지 마칠 시간은 주지 않고 우주는 기절했다. 분명히 퇴근시간에 서울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덕분에 잠도 조금 챙겨 자고 샤워도 하고 짐도 집도 여유있게 쌌지만 퇴근시간의 경부고속도로는 헬이었다. 우주는 그래도 잘 버텨주었다. 배고픔에 울긴 했지만 주스 두 팩을 때리고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렸던 자동차 여행을 견뎌냈다.


일산, 구리로 빠지는 분기점에서 한 번, 하남IC로 나가는 길에서 또 한 번 끼어들기 하는 차들 때문에 화딱지가 났다. 브레이크를 계속 밟았다 뗐다 하는 바람에 발부터 골반까지 저릿저릿 했다. 그렇게 병원에 거의 다 다라서 서방구의 전화를 받았다. 9시에나 끝난다고 했던 수술이 6시에 마쳤다는 소식이었다. 긴장의 반은 운전 탓이 아니라 아버님 수술 소식을 기다린 탓이었다는 걸 알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다행이다. 의식이 깨신 상태로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고 했다. 지금도 잘 계시려나.


머리가 잔뜩 떡지고 긴장이 풀려 눈이 한껏 퀭해진 서방구를 픽업해서 너무 좋아하는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에 갔다. 우주는 신이 났다. 지난 번에 이모랑 왔다는 말을 여러번 반복했다. 내 몸은 한껏 흥분한 우주의 놀이터가 되어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도록 정신없이 먹었다. 다행인 것은 우주도 서방구도 배불리 잘 먹었다. 수술이 끝나기 전이었다면 병원에 서방구는 두고 짐만 받아서 우주와 둘이 대충 숙소에서 밥을 먹었을 텐데. 정신이 없어도 괜찮았다.


자다 깬 서방구와 맥주를 마시느라 더 쓰지 못하고 그냥 잠들었다. 모두 무사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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