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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Jul 21. 2022

22년 7월 21일 이렇게 시원하다고?

22개월 14일

서울에서 바로 엄마집에 왔다. 극심한 피로에 짓눌려 위기를 몇 번이고 넘겼던 2시간 40분이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기흥휴게소에서 다시 물었는데 우주는 오래 걸리더라도 이모를 보러 가야겠다고 했다. 송파에서 기흥까지 한 시간 잔게 다여서 엄청 졸립고 답답했을 텐데 이모집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대전까지 왔다. 이모를 만난 우주는 기뻐서 뛰었다. 어차피 밤에 잠들 때는 또 집에 가자고 할 거면서. 오리백숙도 먹고 종이접기도 하고 놀이터도 가고 이모부도 만나고 맛있는 딸기스무디도 먹고 아무튼 기똥찬 하루를 보냈다. 나는 밀려오는 피곤을 참고 대전까지 온 것에 보람을 느꼈다. 첫째는 우주가 행복해서 둘째는 내 몸이 편안해서다.


점심은 병원에서 서방구와 같이 먹고 짐과 함께 병원에 서방구를 두고 왔다. 아버님은 우리가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쯤 입원실로 오셨다고 했다. 무통주사 부작용으로 메스꺼움을 심하게 느끼셔서 어제부터 계속 토하고 아무것도 드시지 못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일어나 걸어야한다는 의사의 말에 헛웃음을 지으시며 보호자로 어머님이 왔으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당신께서 아마 죽었을 거라 하셨다며 서방구는 생각보다 보호자가 할 일이 많다고 전했다. 수술이 보통일이 아니구나. 면회 한 번 불가능한 이 시국이 원망스럽다. 우주 때문에 다같이 웃으면서도 모두 마음 한켠에 걱정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오늘 밤은 아버님께 조금 더 나은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 근방에 친한 언니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어서 언니 얼굴도 보고 맛있는 커피도 마실 겸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들렀다. 언니는 더 예뻐졌고 내년 쯤 결혼하게 될 것 같다는 좋은 소식도 전해주었다. 언니와는 시애틀 자유여행 중에 호스텔에서 우연히 만나 6년 째 연을 이어가고 있다. 시애틀의 시간이 애틋한 만큼이나 소중한 인연이다. 다시 못 올 순간을 공유했다는 기억의 힘이 이렇게나 강하다.


MBTI로 자신을 탐구했던 이야기를 한참 나누며 무엇이든 정확해야하는 성격 탓에 답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특성인 육아의 세계가 막연하게 두렵다는 언니에게 용기를 주었다. 나 같이 무계획이 계획인 사람에게 어려운 부분은 오히려 언니처럼 정확한 사람에게는 수월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정말 그렇다. 천성이 J인 사람에게는 육아에 필요한 여러 감각이 이미 탑재 되어있으니 나 같은 파워P가 뚝딱거리는 부분을 힘들이지 않고도 해낸다. P라고 육아에서도 유연하게 굴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나는 오히려 J성향의 엄마들이 자주 부럽다. 그리고 어쨌든 P나 J나 아기를 기르며 본성을 거스르게 되는

일은 피할 수 없으니 누가 더 특별히 어려운가를 고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비가 다시 오기 시작한다. 다행히 우리가 숙소를 나서서 대전에 오기까지는 비가 그쳤었다. 그 전까지는 밤부터 내내 비가 오는 바람에 기대했던 석촌호수 아침 산책을 하지 못 해 여전히 아쉽다. 우주는 이모집에 더 있고 싶다고 했지만 내일은 아침만 먹고 얼른 집에 다시 올라가기로 했다. 이케아도 가고 동물원도 가고 백화점 엘베도 맘껏 타는 것으로 주말 동안 아쉬움을 달래주어야지. 나도 일찍 자야겠다. 내일의 고속도로에서도 피곤이 밀려오는 공포를 느낄 수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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