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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Jul 30. 2022

22년 7월 25-29일 다시 뜨거운 나날들

22개월 18-22일

몸도 맘도 개운한 금요일 밤이다. 우주도 자고 설거지도 다 하고 오래 묵은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고 샤워까지 했는데 아직 열두 시가 넘지 않았다. 요즘 씻을 시간이 충분치 않아서 몸을 대충 닦고 나오기 바빴는데 오늘은 새 때밀이까지 등판하여 땀으로 쌓인 각질을 벗겨냈으니 개운하지 않고 배길 수 있나. 게다가 내일은 토요일이다! 같이 야식으로 떡볶이를 먹기로 한 서방구가 우주보다 먼저 기절했지만 깨우지 않아도 충분히 신나는 밤이다. 고요 속에 일기를 다 쓰고 나면 보고 있던 Fly to the dance를 마저 볼 것이다. 


아버님 퇴원과 서울 여행으로 한 주를 열었다. 퇴원 일정이 예상보다 하루 빨라져서 월요일이 되는 바람에 동선이 복잡해졌다. 우주와 내가 차를 몰고 아산병원으로 갔다가 서방구에게 차를 토스하고 우리는 다시 지하철로 연남동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우주와 지하철 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 캐리어에 대충 짐을 때려 넣고 가려고 했던 계획도 차가 없어지니 차질이 생겼다. 집에 있는 백팩으로는 도저히 2박 3일 짐을 꾸릴 수가 없어서 백팩도 하나 새로 장만했다. 짐을 넣으면 넣을수록 다 들어가서 결국엔 우주보다 더 무거워진 것 같은 백팩을 메고 유모차에 우주를 태워 여행길에 올랐다. 마음은 가벼웠다. 병원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 아버님의 표정이 매우 밝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다 잘 되어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2호선에 올라탄 우주는 긴장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내려야 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갈길은 멀다. 적어도 스무 개가 넘는 역을 지나가야만 한다. 여기에서 내려 택시를 탄다고 해도 문제다. 택시 뒷자리에 앉아 아마도 엄청난 난동을 부릴 테니. 다행히 열리고 닫히는 문, 곳곳의 화살표, 기호, 알파벳 그리고 색을 찾으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안내방송에서 나오는 역 이름도 비슷하게 읊어보며 신이 났다. 나는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환희를 느꼈다. 서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다. 꼭 서울에 왔다는 느낌이 뼛속까지 들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주는 어땠을까? 창 너머로 보이는 반대편 기찻길을 보고 좋아했다. 그렇게 50분 정도 흐른 후에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역에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카페까지는 경의선 숲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어야 했다. 다행히 우주는 유모차에 잘 앉아있다가 가는 길에 잠이 들었다. 너무 더워서 그리고 너무 예뻐서 말이 안 나왔다. 하늘이 하늘색이었다. 여름에만 볼 수 있는 흰 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었다. 뜨거운 햇살이 파고들었다. 거의 죽겠다 싶을 때쯤 카페에 도착했다. 4층까지 계단으로 이어지는 카페여서 친구들이 마중 나왔다. 다섯이서 모이는 것은 6개월 만이다. 원래 1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려웠는데 언젠가부터 꽤나 자주 모이는 모임이 되었다. 우주를 낳은 뒤로는 우리 집에서만 모이다가 우주를 데리고 둘이 1박 모임에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연남동의 낮은 스카이 라인이 창 너머로 보이고 햇살이 예쁘게 카페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커피도 맛있었다. 거기에 앉아서는 예쁜 말만 하고 싶었다.


여행 일정과 숙소, 밥집, 카페 등 거의 모든 것을 정하는 친구가 이번에도 예쁜 숙소를 찾았다. 먹자골목 안쪽에 위치한 곳이어서 접근하기에도 좋았다. 경의선 숲길이 가까워 우주와 밤 산책도 했다. 우주에게 숙소 안에서만 있게 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 몸을 더 움직여야 일찍 잠을 잘 테고 그래야 내가 편안히 수다의 시간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아무튼 계획은 처참히 실패했지만 저녁의 숲길을 거니는 사람들 틈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마음껏 느끼고 왔다. 여기가 기찻길이었다고 말해주니 우주도 흥미로워하는 것 같았다. 편의점에서 친구 칫솔을 사면서 우주에게 뽀로로 스티커도 하나 쥐어줬다. 이런 게 여행의 맛이지. 


여러 번 잠들기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결국 다 같이 자는 척했더니 그제야 우주는 잠이 들었다. 서울 사는 두 친구는 집으로 돌아가고 남은 셋이서 새벽 다섯 시까지 수다를 떨었다. 너무 오랜만이었다. 자고 싶지 않았지만 집에 돌아갈 일정을 생각하면 어서 자야 한다. 어른들끼리 있었다면 체크 아웃 시간까지 내리 자도 되겠지만 우리에겐 알람 같은 우주가 있었으니. 다음 날 일어나 차례차례 씻고 밥을 배달시켜 먹고 숙소를 나섰다. 친구가 찾아 둔 또 다른 카페로 이동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지만 마치 또 다른 자연 속에 들어온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우리가 자리 잡은 곳은 흙바닥에 돌다리가 있는 곳이어서 우주도 그곳을 신나게 누볐다. 


우주가 맘에 들어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아주 잠시 뿐이었던 것 같다. 집으로 갔던 친구들을 기다리며 계단을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하고, 바닥이 자갈이었던 지하 1층에 내려가서는 돌이 무섭다는 우주를 계속 안아줘야 했다. 돌이 무서우면 안 내려오면 된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적어도 다섯 번쯤은 내려갔다 올라온 것 같다. 졸려서 그렇다는 걸 알지만 새벽까지 떠들다 쪽잠 자고 일어난 내 몸도 버티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친구가 너무 늦게 도착해서 우리가 기차 시간을 늦추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는 자제력을 잃을 뻔했다. 우주가 잠을 더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거절했다.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으니 버티고 버텼다.


늦게 온 친구와 눈도장만 찍고 카페를 나섰다. 대전으로 내려가야 하는 친구와 함께였다. 우주는 오던 길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모차에 타자마자 기절했다. 얼마나 피곤했을까. 미안했다. 떡실신한 우주는 지하철 도착 안내방송을 듣고서는 '엘베!'를 외치며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났다. 익숙한 눈빛으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두 번이나 타니 신나서 엘리베이터 안의 모든 숫자와 기호를 외쳤다. 안내문을 붙이러 나오신 역무원이 우주에게 대단하다며 칭찬해주셨다. 우주는 확실히 칭찬을 좋아한다. 친구와 무사히 제시간에 기차에 올라 유모차도 잘 싣고 자리에 앉았다. 유난히 그 친구를 제일 잘 따르던 우주는 친구 무릎에 앉아 대전까지 내려왔다. 기차에서 혹시 더 자려나 했지만 모든 것이 신기한 우주는 그저 즐길 뿐이었다. 마중 나온 엄마 차에 몸을 싣고 빵집으로 먼저 갔다. 크림빵 하나를 때리고 의자에서 기절했다. 


진짜 피로는 다음 날 찾아왔다. 저녁에 동생이 끊어준 타이 마사지가 무색하게 온 몸이 무거웠다. 눈꺼풀이 도저히 제대로 떠지지 않았다. 피곤한 것은 우주도 마찬가지였다. 낮잠을 30분만 자고도 이모와 신나는 밤을 보내느라 늦게 잔 우주는 늦잠도 자고 낮잠도 또 많이 잤다. 일어나서 엘리베이터 몇 번 타고나니 출장 갔던 서방구가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짐을 후다닥 챙겨서 빵집에 들러 빵을 먹고 아울렛에 들러 서방구 안경을 맞추고 어머님 댁에 들러 저녁을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차에서 푹 잔 우주는 예상대로 12시가 다 되어서야 잠들었다.


피곤함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도 또 떠나고 싶다. 짐을 다 빼서 홀쭉해진 채로 복도에 누워있는 백팩을 볼 때면 뜨거워도 또 나가고 싶다. 그게 내가 여름을 보내온 방식이어서 그런 것 같다. 여름은 무조건 뜨겁게! 교회에서 하는 여름 행사는 할 수 있으면 다 따라다녔다. 7년 간은 매 해 필리핀에 다녀왔다. 여름은 뜨거움을 제대로 느끼면서 지나가야 속이 후련했는데 임신과 이사 그리고 출산으로 근 2년 간 그런 여름을 보내지 못했다. 가능한 한 에어컨 아래에 앉아 심신의 안정을 취했고 코로나로 사람이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주와 무거운 가방을 메고 뙤앙볕에 오고 가던 길이 자꾸만 떠오르는 건 뜨거운 여름이 그토록 고팠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도 피로가 덜 풀렸는지 그 좋아하던 마트도 마다하는 바람에 목요일 하루는 냉장고 털기로 끼니를 해결했다.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난 저녁에 기운을 차렸는지 마트에 가겠다고 해서 식량을 채울 수 있었다. 타요 미니카 중에 '가니'만 없어서 사주러 갔다가 알파벳 자석이 있는 칠판 앞에 서서 한참 놀았다. 너무 좋아해서 사주고 싶지만 너무 안 예뻐서 사줄 수 없었다. 오늘은 이층 버스를 타고 판교 현백에 갔는데 장난감 가게에 샘플로 놓인 파란 자동차를 너무 좋아했다. 사줄까 싶어서 봤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말았다. 자리를 떠날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걸 보니 좋아한다고 꼭 다 사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사주면 습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퇴근하고 온 서방구와 현백에서 저녁까지 해결하고 셋이 다시 이층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자기가 본 것 중에 아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느라 우주의 말은 끊이지 않았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 것일까. 혹시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싶어 계속 작은 소리로 말하자고 했지만 크게 효과가 있지는 않았다. 부모에게도 타인에게도 인내심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다. 혼낸다고 해서 본인이 행동을 교정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멀었다. 그래서 어딜 나가면 눈치가 많이 보이고 또 반대로 누구에게도 주의를 받지 않고 돌아올 때마다 안도한다. 불편했겠지만 참아준 것일 테니. 


어제 낮에 샤워하며 우주 머리를 깎아줬는데 너무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급한 마음으로 숱을 쳐서 그런지 빡구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 씻으면서 마트에서 사둔 다른 미용가위로 다시 조금 다듬어 주었다. 귀 근처에 가위가 다가오니 기겁을 하고 싫어해서 또 급하게 잘라내는 바람에 또 다른 층이 생겼다. 씻기자마자 우유를 먹여 깜깜한 방에  누이느라 머리가 어떻게 됐는지 잘 보지는 못했다. 아침에 너무 충격적이면 어쩌지. 다음에는 미용실에 꼭 가야겠다. 까만 얼굴이 볕에 타서 더 까매졌는데 머리까지 깡똥해서 도토리가 따로 없다. 


주말에는 오랜만에 셋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야겠다. 병간호하느라 쌓인 피로를 풀지도 못하고 다시 일터에서 보낸 한 주가 버거웠을 서방구에게 쉼도 주고 맛있는 것도 줘야지. 나는 재밌는 한 주를 보냈으니. 받은 에너지를 흘려보내야 한다. 커피를 마신 듯 마음이 들뜨는 건 오늘 낮에 오랜만에 본 전시 때문인 것 같다. 정신없고 짧은 순간 뇌가 팡팡 터지는 기분을 한껏 느끼고 왔다. 이 기세를 몰아 플투댄을 더 보다가 기쁘게 잠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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