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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Aug 26. 2022

22년 8월 25일 우주 콧물 주의보

23개월 18일

엄마에게 미안한 아침을 보냈다. 시댁에서 먹을 우주 반찬을 준비해 가려 한다고 엄마한테 말했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그냥 재료만 들고 가기로 혼자만 생각한 탓이었다. 어제 엄마 귀가가 늦어서 그 얘기를 전달하지 못했는데 늦은 아침 일어나 보니 엄마는 갖가지 반찬을 만드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반찬을 만들다 우리 아침밥까지 챙겨주고  한의원 예약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안 해도 된다고 말해줄 걸. 이제 와서 말해봐야 엄마의 아침을 헛수고로 만들 것 같아서 그냥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덕분에 내일 아침엔 일어나서 반찬을 꺼내 주기만 하면 된다.


옷가지와 음식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사고 복숭아도 샀다. 서방구가 오지 않는 날, 우주와 둘이 시댁에 가는 건 신혼 때 혼자 한 번 와본 이후로 처음이다. 그래서 어머님 아버님도 오늘 우리가 올 줄 몰랐다고 하셨다. 그때 한 번의 기억이 좋지 않아서 그 뒤로 절대 서방구가 없을 때는 시댁에 오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이제는 우주가 있으니 내 쪽에 집중되는 시선이 없어졌고, 나도 결혼 한지 꽤 되어서 불편한 말은 대답하지 않고 흘리거나 영혼 없이 수긍하거나 반박하거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그래서 괜찮을 것 같았다.


시댁이 가진 장점도 있다. 비교하자면 엄마  보다 시댁에 있는  체력 소모가  하다. 시부모님은 24시간 집에만 계시고, 먹을 것도  있고, 아파트 단지 조성이  되어있어서 우주랑 산책하기도 부담이 없다. 엄마 집은 반대로 식구들이 모두  하러 나가서 집에 우리 둘이 있는 시간이  길고, 먹을 것도 마땅치 않고,  앞은 바로 주차장이고 도로변이라 우주와 산책할  있는 곳이 없으니 우주랑 놀만한 곳을 찾으려면  차로 이동해야 한다.  세끼 챙겨 먹이는 일도 시댁에 있으면 훨씬 수월하다. 부족하더라도 우주를 돌보는 손이 셋이니까.


우주는 자주 다시 이모 집으로 가자고 했다. 심심해서 그러는지 뭔가 피곤해서 그러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별 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받아주려고 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콧물과 재채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우주가 다시 아플까 봐 걱정되신 시부모님이 어서 병원에 가자고 부추기셨다. 저녁으로 먹을 소고기 뭇국을 준비하다 말고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도 우주는 겁에 질린 울음으로 병원을 떠나보내고 돌아왔다. 콧물약을 사면서 우주가 좋아하는 뽀로로 비타민도 한 봉지 샀다. 기분이 좀 나아지려나. 그래도 바깥바람을 쐬고 들어오니 환기가 된 모양인지 할아버지랑 잘 놀았다.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저녁은 다행히 맛있게 잘 먹고 응가도 시원하게 했다. 비타민을 두 개 꺼내 줬더니 세상 행복해했다. 비타민이 한 봉다리나 있다는 사실은 우주에게 비밀이다. 계속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비타민에 복숭아에 수박도 때리고 소파 침대에서 뛰고 구르고 넘어 다녔다. 더워지기 시작한 5월부터는 에어컨이 있는 안방에서 자다가 오랜만에 다시 소파 침대가 있는 아버님 방으로 왔는데 우주가 노는 모습을 보니 새삼 우주의 성장이 실감 났다. 낑낑대며 오르지 못했던 팔걸이를 그냥 쉽게 넘어 다닌다. 침대에서 방방 뛰는 것도 이전에는 하지 못했는데. 정말 많이 컸다.


언제쯤에나 잠이 들려나 했는데, 다행히 불을 끄고 누워서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진정이 됐는지 어느샌가 조용해졌다. 그 틈에 나도 잠시 기절했다가 눈을 떠보니 곤히 자고 있었다. 아침까지 푹 잤으면 좋겠다. 그대로 더 잘까 말까 하다가 어제 하루 운동을 건너뛴 게 생각나서 스쿼트 3세트를 하고 누웠다. 아직 졸리지 않으니 책을 좀 더 보다가 자야겠다. 내일은 금요일이다. 서방구가 온다. 비가 오지 않으면 우주랑 산책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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