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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Aug 26. 2022

22년 8월 26일 밤바람 냄새가 가을

23개월 19일

어제부터 두통이 가시지 않는다. 소화불량도 계속 있고. 뒷목이 당기는 걸 보니 어깨랑 목이 잔뜩 뭉친 것 같다. 덕분에 잠도 안 온다. 잠을 편히 잘 환경이 아니라서 더 경직되는 것 같다. 우주가 계속 집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나야말로 집에 가고 싶다.


우주는 예민하다. 새로운 것에 대해 특히 그렇다. 오래 보더라도 편안하고 익숙해지지 않으면 계속 예민하게 반응한다. 우주의 예민함을 그대로 받아줄 때도 있고 조금 견뎌보고 이겨보도록 도와줄 때도 있다. 예민한 아기를 돌볼 때 그 두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란 꽤나 긴장되는 일이다. 항상 우주를 관찰하고 우주의 촉각이 곤두설 때면 마음을 알아주는 게 우선일지, 이겨내도록 기다리는 게 먼저일지 늘 고민해야 한다. 우주를 유심히 지켜보는 일이 많으니 잊고 살았던 내 어린 시절도 자연스럽게 떠오를 때가 있다.


우주가 나를 닮아 그런 것인지 서방구를 닮았는데 그게 나랑 비슷할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우주처럼 예민했다. 다른 집이나 새로운 공간에서 잠자기를 어려워했다. 일곱 살인가, 친한 친구네 집에서 자고 싶다고 조르고 졸라서 갔다가 자려고 누웠는데 너무 집에 가고 싶어서 다리가 아프다고 울었다. 결국 엄마 아빠가 데리러 왔다. 예민하게 굴었던 기억이 몇 개 더 있다. 집 화장실 바닥이 아무리 깨끗해도 맨발로 타일을 밟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까준 귤은 이상하게 역해서 먹지 못했다. 컵도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한 번 먹은 컵에서는 그 사람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쓰지 않았다. 과일이 조금이라도 물러있으면 과일 전체가 다 이상한 맛이 나는 것 같아서 먹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몇 가지는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또 몇 가지는 어느샌가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화장실 타일을 맨발로 밟는 것은 아직도 어렵다. 과일이 깨끗하지 않으면 못 먹는 것도 많이 고치긴 했지만 여전히 불편하다. 그래도 너무 까탈 부려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 정도는 아니니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다. 그러니까 우주도 언젠가는 자기의 예민함을 보듬어가면서 적당한 선을 찾으며 살아가겠지. 억지로 없앤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다. 잘못도 아닌데 말이다.


병원 진료실에서 몸을 바들바들 떨며 우는 우주를 보고 어머님은 그러지 않도록 잘 가르치라 하셨다. 우주가 아직도 캡을 쓰고 머리를 감는다는 말에 아는 언니는 캡 쓰지 말고 며칠 그냥 샤워기로 머리 위에 물을 뿌리면 알아서 적응할 거라고 조언했다. 진료실에서 우는 게 불편한 건 어른이지 우주가 아니다. 이미 우주는 불편한 상황을 마주했고 살 길이라곤 냅다 울어버리는 것뿐이라 어쩔 수 없다. 캡 없이 일주일 동안 머리를 감겨봤는데 우주는 매일매일 더 심하게 두려워하고 저항했다. 무언가를 적응시키고 이겨내라고만 하는 건, 어떤 때에는 혹은 어떤 아기에게는 너무 가혹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잠들기가 힘든 밤이라 이런저런 생각이 났다. 우주와 서방구는 곤히 자고 있는데. 나도 잠들기 어려우면서 우주에게 얼른 자라고 보챘던 게 조금 우습다. 내일은 어쨌든 다시 친정으로 이동한다. 조금 낫겠지? 머리가 더 아파오는 것 같다. 어떻게 해결하고 자면 좋을지 궁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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