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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Aug 28. 2022

22년 8월 27일 시원해!

23개월 20일

두통에 잠 못 이루던 어젯밤, 요가와 마사지로도 두통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타이레놀을 먹었다. 신기하게 약효가 들자 잠이 솔솔 왔다. 두통을 자주 겪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잠이 안 올 정도로 심한 두통은 가뭄에 콩 나듯 해서 반드시 어떤 원인이 있을 거라며 오늘은 내내 왜 머리가 아팠을까 생각했다.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스트레스다. 왼손잡이인(것 같은) 우주에게 밥을 한 술 뜰 때마다 "우주야, 오른손으로 잡아야지."하시는 아버님과, 우주를 너무 부드럽게 대해서 우주가 대범하지 못하다고 종일 말씀하시는 어머님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계속 긴장했나 보다. 등은 딱딱해지고 어깨는 묵직하게 굳고 목은 빳빳하게 섰다. 다행히 오늘은 아버님과 어머님이 잔소리를 하시면 더 심하게 달려드는 서방구가 있어서 약으로 사라진 두통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다.


이제 무사히 낮잠까지 재우고 짐 싸서 시댁을 떠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다시 친정으로 간다고 하니 아버님은 며칠이나 거기 있었는데 벌써 가냐며 한 소리 하셨다. 처음에는 대답하지 않았고 두 번째에는 엄마, 아빠도 사위 얼굴 좀 봐야 하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속에서 천불이 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우주 많이 보시라고 서방구도 없이 미리 가서 2박 3일이나 있어드렸더니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되려 더 있지 않아서 서운하다는 말만 듣다니. 보람도 없고 맥이 빠졌다. 늘 그런 식이었다. 잘하려고 하면 더 요구하셔서 나는 이내 잘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이번에도 그렇다. 1절, 2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3절까지 하셔서 늘 스스로 쐐기를 박으신다. 이번에도 그랬다. 두 분이 앉아서 또 벌써 가느냐는 대화를 내 뒤통수 뒤에다 대고 또 하셨다. 못 들은 척했다. 아, 오늘은 4절까지 있었구나. 나가려고 준비 다 했더니 저녁 먹을 것도 있는데 먹고 가지 그러냐고.


우주가 낮잠을 자는 동안 방에서 요가도 하고 스쿼트도 하고 책도 읽으며 마음이 쉬도록 도왔다. 이해해보려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화가 날 것을 알기 때문에 곱씹고 곱씹으며 그럴 만한 사정을 찾아내려 애썼다. 아버님, 어머님은 연세가 들어 사회적인 관계가 점점 사라지고 두 분이서 집에만 계신다. 우주가 와있는 시간은 아마도 그분들의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자 유일한 낙일 것이다. 우주가 오면 기쁘지만 떠나면 같은 크기로 서운할 것이다. 게다가 대전에 오면 내가 친정에 지내는 날수가 더 많다는 걸 알고 있으니 서운함의 초점은 그리로 갈 수밖에 없다. 본인들 생각에는 친정이나 시댁이나 다를 바 없이 편할 텐데 왜 시댁에만 짧게 머무르나 싶기도 하실 테다. 오면 밥 세끼 차려 먹이고 늦잠도 낮잠도 충분히 자게 하고 어려운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누가 불편하게 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떳떳한가? 그 질문에는 고민의 여지없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나는 시부모님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내게 그 이상을 요구하고 계시지만 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 2박 3일 넘게 시댁에서? 나는 못 한다. 그래서 그냥 하던 대로 하기로 했다. 서운함의 근원을 이해했으니 이해만 하는 걸로 하고. 혹시 더 강하게 서운함을 어필하시면 그때는 나도 나의 최선을 강하게 어필하는 걸로. 아니 잠깐만. 나 참, 곧 있으면 또 추석인데 정말 생각할수록 나도 서운하다!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는 자매가 있다. 둘 다 언니인데, 시댁 근처 아울렛에 온 가족이 출동한다고 해서 조인하기로 했다. 애가 넷이나 되니 주문 하나 하는 것도 귀가 따가워서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즐거웠다. 우주도 아홉 살 형이 하는 말을 듣고 따라 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오늘은 묵찌빠를 배웠다. 하는 방법을 배우지는 못했고 신나게 '찌찌찌, 빠빠빠'를 따라 외쳤다. 3일 간 받은 스트레스를 날리려고 가을 티셔츠를 두 장 샀다. 너무 맘에 들어서 신났다. 얼른 입고 싶다.


다 같이 한빛탑에 가기로 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또 만날 수 있다니 너무 좋다. 음료를 포장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서방구와 동생은 우주가 잠들기도 전에 기절했고 우주도 어렵게 잠이 들었다. 잠들기 아쉬운 밤이지만 같이 놀 사람이 없어 일기로 마음을 정돈한다. 아! 오늘 문득 교정, 교열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우주 낮잠 시간에 책을 읽다 든 생각인데, 스스로 글을 교정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을 읽다가 머리에 띵! 전구가 켜진 것이다. 틀린 맞춤법이나 표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을 좋은 곳에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쓰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되겠지? 뜯어보면 내 글도 엉망진창이라는 걸 교정 책을 보며 깨달았다. 아무튼 새로운 도전이 떠오른 날은 머릿속에서 축제가 열린다. 일기 쓰기 전까지 계속 교정교열에 관한 정보를 검색했다. 더 찾아보고 싶지만 이만 참고 사놓은 책을 일단 열심히 보기로 했다.


이제는 자야겠다. 오늘도 잘 넘겼다. 수고했다. 내일도 재밌게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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