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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Sep 01. 2022

22년 8월 31일 비 오고 흐리고 해가 났다

23개월 24일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제 저녁, 대전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푹 잔 우주는 역시나 11시 반이 거의 다 되어서야 잠들었다. 새벽에 깨서 두유 한 팩을 원샷 하고 9시 반까지 늦잠을 이어갔다. 우주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밥과 된장국을 준비했다. 뚝딱뚝딱 소리에 우주가 깼다. 다행히 배가 많이 고프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주랑 놀면서 된장국을 마무리 하고 늦은 아침을 먹었다.


오래 집을 비운 터라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 다녀왔다. 일단 배가 고플지 모르니 장보기 전에 앤티앤스에 들러 커피와 프레츨을 먹었다. 수족구 판정을 받던 날이 겹쳐 보였다. 그날도 이렇게 우주와 마주보고 앉아 프레츨을 먹었는데. 우주 병간호가 끝나고 나니 8월 말이 되었다. 대전에서 다시 시작됐던 콧물도 소강상태다. 이틀 간 먹을 양식을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나 돌아오는 길에 잠이 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졸린 눈을 하고서는 오늘 결국 낮잠은 자지 않았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빨래 릴레이가 이어졌고 그간 쌓인 먼지가 코를 간지럽혀서 청소기도 돌리느라 우주가 혼자 시간을 많이 보냈다. 말이 자유자재로 트인 후로는 혼자서 노는 시간이 간혹 생기더니 그게 점점 길어지고 있다. 장난감을 가지고 생각나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상황극을 만들기도 한다. 가장 많이 하는 대사는 "~야!, 왜 부르니?"와 "너 어디가니?"다. 너무 웃기다. 원래는 우리 둘이 같이 놀 때 하던 상황극인데 두 명 몫을 혼자 한다. 내일은 같이 오래 놀아야지.


저녁은 대전에서 사둔 레토르트 볶음밥으로 정했다. 집안일에 밀려 우주가 너무 혼자 있지 않았나 싶어서 있는 걸로 먹이고 요리는 쉬기로 했다. 나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오늘까지 배관 공사 때문에 온수가 중단되었다가 저녁 6시부터 다시 공급된다고 했는데, 따뜻한 물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관리사무실에 전화했더니 7시에는 나올 거라고 해서 우주와 밖에 나가 놀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제일 좋아하는 아파트 입구의 엘리베이터도 타고 버스 정류장에서 카드찍기 놀이도 했다. 카드를 대고 버스 잔액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후불교통카드도 어쨌든 '삑'하는 소리가 나서 우주가 한참 소리내며 놀았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와 놀이터로 갔다. 그물을 타고 올라가는 기구에서 우주는 방법을 가르쳐 주자 꼭대기까지 찍을 기세로 마구 올라갔다. 더 올라가면 내가 잡아줄 수 없을 것 같아서 말렸다.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짚라인처럼 레일에 매달려 이동하는 것도 원래는 손을 대보다가 얼른 뗐었는데 오늘은 꽉 잡고 끝까지 갔다(물론 내가 매달고 달렸지만). 우주의 성장을 실감했다.


온수가 바로 나올 것 같지 않아서 7시를 더 넘기고 집에 올라갔는데 녹물을 한참 틀어내도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았다. 우주는 물 흐르는 소리에 홀리듯 화장실에 들어와 세면대에 서서 물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물이 나올 거라 생각하고 옷도 벗기고 씻을 채비도 다 했는데. 발만 동동 구르다가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서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고 욕조에는 찬물을 받았다. 물을 세 번 끓여 붓고 나서야 쓸만 한 온도가 됐다. 필리핀에서 씻던 그 느낌 그대로 바가지에 물을 담아 뿌리며 우주를 씻겼다. 덕분에 한 시간 만에 화장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너무 신나게 놀아서 허기진 우주는 잠들지 못하고 빵 먹고 싶다고 외쳤다. 크래커에 치즈를 올려주고 요거트도 먹였다. 적당히 먹은 듯 해서 조금 더 놀다가 내가 먼저 자러 간다 말하고 우주 방으로 들어갔다. 아쉬움에 몸부림 치며 나를 부르던 우주는 곧 방으로 따라 들어왔고, 안 잘 것처럼 굴더니 금방 잠들었다. 9시 반이었다. 나이스. 내일은 기필코 7시에 깨워서 밤잠 시간을 계속 당겨보리라!


갑자기 저녁 약속이 생겼다며 늦는 서방구에게 전화를 걸어 닥달했다. 분명히 술에 취해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이미 꽤나 취한 모양이었다. 언제 오냐고 물으면 물었지 당장 들어오라고 한적은 없는데 오늘은 지금 바로 오라고 말했다. 서방구는 정말로 전화를 끊자마자 자리에서 나와 버스를 탔다. 서방구가 집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가 현관 앞에 도착하자 마자 바톤터치 하고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달리기 첫 날이다.


대전에서 한의원에 갔을 때 원장님이 그러셨다. 등 아프고 온 몸이 붓고 찌뿌등 한 건 육아 중이라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증상이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게 바로 달리기라고 하셨다. 약이나 치료로도 안된다고. 도무지 얼만큼 달려야 할지 모르겠어서 몇 분 달리면 되냐고 했더니 처음엔 3분으로 시작하라고 하셨다. 아마도 2주 동안은 점점 늘어간다는 느낌이 아니라 더 못 달리겠다고 할 거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3분? 너무 쉽지 않나? 그래도 내가 홈트는 꾸준히 한 몸인데!


바깥에 나오자마자 몸을 풀고 점프를 몇 번 한 뒤에 3분 타이머를 맞춰놓고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딱 죽겠다 싶어서 워치를 보니 1분이 지나있었고 그렇게 20초 더 달리다 멈춰버렸다. 너무 힘들었다. 계속 쉬면 안될 것 같아서 다시 2분 타이머를 맞추고 달렸다. 그래도 2분은 연달아 달렸다. 폐가 따가웠다. 숨이 가빠서 헉헉 댔다. 운동장 10바퀴 뛴 사람처럼 소리를 내지 않고는 숨을 쉴 수 없었다. 3분 힘들구나.


술에 취해 우주 방 바닥에서 잠에 빠진 서방구를 안방에 옮기려다 실패하고 배고픔을 달래려 떡볶이를 시켰다. 그 사이에 밀린 설거지를 해치웠다. 거의 다 해갈 즈음에 떡볶이가 도착했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떡볶이 맛이었다. 파랑 양배추도 들어있어서 너무 좋았다. 콜라 한 캔과 김말이도 야무지게 먹었다. 배가 부르니 잠이 솔솔 온다. 우주도 다행히 푹 자고 있다. 서방구는 갑자기 깨서 안방으로 넘어왔다. 기억 안 날 때 엉덩이를 마구 때려줘야겠다.


자야지! 졸립다. 오늘도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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