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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Sep 03. 2022

22년 9월 2일 가을 볕이 따갑다

23개월 26일

풀벌레 소리가 쉴새 없이 들리는 새벽, 우리는 캠핑장에 와있다. 매너타임이 시작됐는데도 여전히 시끄러운 옆 텐트에 조용히 하라고 말하고 올까 고민하다가 기절했다.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깼는데 간간히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텐트가 펄럭인다. 한참 고민하다가 밖에 나가보니 하늘에 별이 엄청 많았다. 앉아서 별멍(?) 때리고 싶지만 춥고 무섭다. 얼른 볼일만 보고 다시 들어왔다. 잠이 다시 올 때까지 일기를 쓰기로 했다.


유튜브를 시작해보고 싶은데 쉽지 않다. 생각만으로는 영상을 찍어 편집하기만 하면 되니까 간단할 줄 알았는데 그런 건 가장 쉬운 영역에 속하는 것 같다. 캠핑 와서 영상을 계속 남겼는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말을 해야하는 건지, 안해도 괜찮은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쩌다 말이 나오면 유튜브에 올릴 영상이 아니라 그냥 내 카메라롤에 남겨둬야 할 추억 소장용이 되는 느낌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능력도 여러번의 시행착오가 필요하겠구나.


이번 일정은 2박 3일로 잡았다. 금요일에 서방구가 일찍 퇴근해서 해가 지기 전에 피칭을 마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섯 시 쯤 도착하면 제일 이상적이지 않나 싶었다. 뜨거운 햇살도 피할 수 있고 일몰까지 시간도 충분하니까. 아침에는 우주와 장을 봐 오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고기 볶음밥과 가자미 구이를 한 번에 해냈다. 우주는 유튜브를 보며 기다려줬다. 점심을 든든히 먹고 응가도 마친 우주를 데려다 눕히니 두 시였고 서방구도 집으로 출발했다고 했다.


모든 게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우주 곁에서 잠깐 눈 붙이고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식재료와 여벌 옷을 챙기면 딱 맞겠다고. 그런데 서방구 생각은 달랐다. 무조건 네 시에 도착해야 차도 밀리지 않고 제 때에 피칭하고 밥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집에 오자마자 네 시까지 갈 수 없는 상황을 보더니 예민하게 굴었다. 예민하게 굴어버리니 나도 화가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차가 막힐 것 같지도 않고 네 시에 가봐야 해가 뜨거워서 고생만 할 텐데. 그리고 우주의 낮잠을 챙기기까지 발을 동동 거리며 바삐 움직였던 것을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했다.


이제는 기분이 상할 때 따지지 않는다. 그냥 그 기분으로 서방구에게 툴툴 거리다가 화가 가라앉으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회복한다. 분노의 설거지를 하면서 생각했다. 서두르지 말아야지. 어차피 늦은 거 다섯 시에 도착해도 문제 없다는 걸 스스로 알게 해야지. 나름의 복수였다. 우주는 부산한 소음 속에서도 네 시가 넘도록 쿨쿨 잤다. 도로는 전혀 막히지 않았다.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캠핑장에 도착했고 문제 없이 피칭하고 저녁을 준비했다.


장작과 그릴사용에 대해 한참 고민하다가 친척언니가 추천해준 구이바다를 샀다. 오늘이 첫 개시였는데, 그간 우주 때문에 먹어볼 생각도 못했던 삼겹살을 구웠다. 지글지글 삼겹살이 익으면서 나는 기름 냄새가 환상적이었다. 한 판 구워내고서 씻어온 김치를 더해 우주 몫으로 김치볶음밥을 했다. 다행히 맛있게 잘 먹어줬다. 그 사이에 콩나물 국도 끓였다. 야무지게 사온 쌈채소에 고기를 신나게 싸 먹었다. 삼겹살은 이제 캠핑에서 먹으면 되겠다며, 괜히 우주 잡아가며 식당에 갈 필요가 없겠다고 입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서방구의 볶음밥까지 먹고 가득 찬 배를 두드렸다. 우주랑 나는 샤워실에 가서 씻고 서방구는 뒷 정리를 맡았다. 캠핑에 와서 샤워해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너무 개운해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게 우주가 많이 자라서 가능한 일이다. 지난 캠핑이 5월 말이었다. 그 당시 우주는 간단한 단어로 말할 수 있을 때였고, 내 말을 귀담아 듣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었다. 캠핑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돌아올 때까지 우주를 주시하며 돌발 행동에 대비해야 했다.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 해서 모든 일은 서방구가 해야만 했다.


오늘 우주는 도착했을 때부터 달랐다. 재밌는 놀이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텐트가 완성되는 모습이 궁금해서 피칭하는 동안 지켜보며 기다렸다. 전에는 이리저리 쏘다니고 싶은 우주를 잡으러 다니느라 바빴는데 말이다. 채소 씻으러 다녀온다고 하니 본인도 가겠다고 해서 망설이다 데리고 갔는데, 끝날 때 까지 내 곁에 서서 어디론가 튀어 나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밥도 같이 앉아 먹고, 잘 시간에는 이너텐트에 들어와 아늑함을 즐겼다. 많이 컸다 정말로.


좀 더 자야하는데 아직은 잠이 안 온다. 내일 종일 흐리다더니 비 소식으로 예보가 바뀌었다. 일요일에는 무조건 비가 많이 올 것 같아서 내일 늦게 철수하기로 했는데. 텐트가 처음으로 비를 맞게 될 것 같다. 그래도 말리고 갈 시간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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