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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Sep 11. 2022

22년 9월 11일 덥다

24개월 4일

정신도 육체도 한계에 도달했다. 힘에 부쳐 이제 더는 못하겠다고 '생각'  있을 때는 아직 한참 여유로운 상태라는  알게 됐다. 진짜 한계에 이르니까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난 일주일이 그랬다. 매일  우주 곁에서 기절하고 다시 눈을 뜨면 우주랑 지지고 볶는 일상. 설거지  번이라도 거들어  서방구가 출장 가고 없으니 체력도 바닥이 났다. 우주 생일도 있었는데. 일기도   남기지 못했다.


생각하니 피곤이 배가 되어 생각을 접어가기 시작했다. 멍한 상태로 만들어놓으니 차라리 몸을 굴리기는 편했다. 무릎이 아프고 다리가 퉁퉁 붓고 목이 빳빳해질 때마다 왜 이러는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생각하기를 그쳤다. 그렇게 방치된 몸은 명절 내내 상태가 악화됐다. 다리는 코끼리 같이 더 빵빵해지고 간혹 흘리던 코피는 한 번 터지면 주룩주룩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댁과 친정에 지내던 나흘 밤, 유일하게 했던 생각은 '도피할 수 있나?'였다.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을 발견하자 가장 먼저 일기가 떠올랐다. 쓸 말이 생겼구나. 나는 지금 정말 도망가고 싶다. 지난 수요일,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출장 일정을 읊어주던 서방구의 말이 돌덩이처럼 가슴에 내려앉아 피로를 풀 겨를도 없이 다시 채찍질이 시작됐다. 내일 집으로 올라갈 텐데, 도착하면 곧바로 엉덩이 붙이지 못하는 일상이 시작된다. 그리고 서방구는 또 출장길에 오른다. 그다음 주에도 또.


출장 일정을 듣자마자 숨이 막힌다고 했다. 서방구는 본인도 숨이 막힌다고 답했다. 4일 일정을 3일로 조정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의미 없다고 말했다. 간다는 것 자체가 힘든 거지 하루 덜 간다고 힘든 게 안 힘들어지지는 않는다고. 더 속상했던 건 자기 탓이 아니니까 미안해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듯한 태도였다. 그는 위로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더 속이 갑갑해졌다. 이럴 때마다 본인도 마찬가지로 힘들다며, 내가 감정을 쏟아내지 못하도록 멀찌감치 선다. 그러면 나는 갈 곳을 잃는다. 타인에게 남편 욕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지속되면 가족은 속상해하고 지인들은 지치기 마련이다.


그 이후로 줄곧 서방구에게 줄 마음이 점점 바닥나고 있는 것 같다. 어차피 같이 있지도 않을 테니 딱히 좋아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서 그냥 그런대로 두고 있다. 지금 더 중요한 건 내가 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우주를 성실하게 돌보는 일이다. 우주가 아프지 않도록 잘 먹이고 잘 재우는 일. 같이 손 잡고 고민해주는 이가 없어서 외롭더라도. 외로움이 우주를 삼키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지.


쏟아내니 좀 낫다. 힘내자. 모든 게 온전치 못하더라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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