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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Sep 14. 2022

22년 9월 13일 왠지 모르게 덥다

24개월 6일

열쇠는 '이른 아침'에 있었다. 몇 달 전에도 한 번 깨달은 적이 있었는데. 우주보다 두 시간 이른 아침을 열고, 그날 먹을 음식을 모두 요리해두면 주방에 언제 갈 수 있을지 우주 눈치를 보는 데 쓰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없앨 수 있다. 어제도 늦게 잠들어서 아침에 눈 뜨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다. 오늘부터 다시 나흘간 24시간 풀 독박 시작이다.


아침과 낮잠 시간에 부지런 떨었더니 냉장고가 가득 찼다. 된장 찌개와 맑은 조갯국, 김치볶음과 불고기까지. 몸이 쉴 시간은 없었지만 마음이 쉬었다. 우주랑 시간을 보낼 때는 우주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로 나가고 싶을 때 망설이지 않고 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 끼니가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오랜만에 맘편히 오후 시간을 누렸다.


연휴를 보내느라 피곤했는지 3시간이 넘도록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 우주는 점심을 걸렀다. 늦게 일어나 입맛이 없는지 간식을 찾길래 식빵과 고구마, 토마토를 챙겨줬다. 배불리 먹고 같이 단지 내 휘트니스로 갔다. 우주를 옆에 잠시 앉혀두고 달렸다. 오늘은 시간을 더 늘려보기로 했다. 5분까지 달려보려고 했는데 4분이 되자 죽을 것 같아서 멈췄다. 그래, 2주에 1분씩만 늘리자...!


짧은 달리기를 마치고 우주랑 백화점에 갔다. 오늘 사촌동생 생일이라서 좋아하는 편집샵에 들렀다. 예쁜 컵 하나를 사고 우주를 위해 엘리베이터 뺑뺑이를 돌았다. 원 없이 타고나서 갑자기 허기진 우주는 식빵을 먹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얼른 다시 집으로 돌아와 남은 식빵으로 시간을 벌어서 그 사이에 김치볶음밥을 얼른 해냈다. 맛있게 잘 먹었다. 된장찌개와 환상 궁합이었다.


밥 먹고 우주랑 설거지도 같이 하고 바로 목욕까지 했다. 베스킨 라빈스에 들러 케이크를 사고 작은아빠 집으로 출발했다. 어둑해진 저녁이라 도로 양 옆으로 반짝이는 도시 풍경이 예뻤다. 오랜만에 가는 길이라 더 설렜다. 동생은 집이냐고 물어보자 혹시 생일 때문에 오는 거면 오지 말라고 했지만 이럴 때 안보면 영영 못 본다. 핑계가 있을 때라도 만나야지. 각 잡고 만나려면 올해 안에는 못 만날 거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 식구들을 만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오랜만에 작은 엄마와 대화도 나눴다. 둘째 동생은 퇴근이 늦어 스치듯 인사하고 나왔지만 그래도 얼굴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많이 보고 싶었다. 우주의 밤잠 시간이 훌쩍 지나간 걸 알면서도 기다렸다가 보고 왔다. 작은 엄마는 방금 만든 잡채를 손에 쥐어주셨다. 다음 출장 일정에는 1박 하고 와야지.


생각보다 건강하게 보냈다. 어제까지만 해도 출장만 생각하면 한숨이 푹푹 나고 두렵고 숨이 막히고 입맛도 없었는데. 힘들다고 축 늘어져있어도 마냥 그렇게 계속 지내는 건 아니구나. 힘들 땐 일어나려고 애쓰지 않아도 언젠가는 자리 털고 일어나는구나 싶다. 앞으로는 힘들 때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고 해도 너무 몰아세우지 말자고 다짐했다.


지난 밤, 오랜만에 카톡으로 수다를 떨어준 친구 덕분에 많이 털고 잠들어서 아침이 가벼웠던 것 같다. 친구라고 무작정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적절한 이해를 보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해가 거듭할 수록 더 선명하게 든다. 처지가 비슷하고 경험도 비슷해야만 나눌 수 있는 얘기가 분명히 있다. 어제는 그래서 친구에게 오랜만에 마음놓고 푸념했다. 척하면 척 알아들어 준 친구의 공이 크다.


묵상하고 기도하고 자려고 했는데 너무 졸립다. 기도만 해야겠다. 내일은 오이지도 새로 도전해봐야지. 돼지고기를 엄청 많이 샀는데 그걸로 뭘 하면 좋을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커다란 햇 밤고구마가 찐 상태로 세개나 냉장고에 있다. 간식도 문제 없다. 든든하다. 내일도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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