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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Sep 22. 2022

22년 9월 21일 가을이다

24개월 14일

일기를 쓰자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만큼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오고 가는 요즘이다. 어제는 시댁에서 지낸 2박 3일 동안 쌓은 분노가 터져 나와 한바탕 일기에 쏟아냈는데 발행할 용기는 없어서 서랍에 고이 모셨다. 그래도 쏟고 나니까 좀 후련하기도 하고, 정신이 들고 나니 시부모님이 나 때문에 애써주신 여러 상황이 생각나서 마음이 풀렸다. 그래도 내내 긴장한 탓인지 친정에 건너오니 온 몸이 쑤신다. 약간의 열감도 느껴지고. 말을 하기도 듣기도 어려웠다. 멍 했다.


우주와 바쁜 하루를 보냈다. 어머님 외출하실 때 차로 모셔다 드리기로 했는데 우주랑 늦잠 자는 바람에 눈 떠보니 어머님은 이미 나가고 안 계셨다. 천천히 아침 먹고 짐을 싸서 시댁을 나섰다. 핸드폰을 두고 오는 바람에 주차장에서 다시 차를 돌려 들어가다가 우리를 배웅하고 혼자 걸어가고 계신 아버님 뒷모습을 봤다. 허전하시겠구나. 며칠 지내다가 돌아간다고 할 때마다 서운함이 밀려오긴 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측은함에 미운 마음도 잠시 숨을 죽였다.


엄마 집에 짐을 내리고 빵집에 들러 동생에게 우주를, 우주에게 이모를 보여줬다. 몇 년 못 본 사이같이 서로 꼭 안아주며 반가워했다. 내 동생이고 내 아들이지만 둘을 보고 있으면 나와의 관계는 지워지고 둘이 뿜어내는 사랑에 심취한다. 그만큼 에너지가 강하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친한 동생네 점심 먹으러 갔다. 이제 5개월인 아기가 있는데 우주랑 가면 아기를 안아주지 못해 아쉽다. 우주가 감시하다가 아기 손이라도 만지려고 하면 얼른 다가와서 제지한다. 질투 대마왕이다. 둘째는 어떡하지?


점심으로 피자를 얻어먹으며 수다를 거의 쏟아내듯이 털었다. 우주를 재워볼까 했는데 불가능해 보여서 포기하고 차에 태웠다. 친구 집으로 향하는 길에 차에서 곤히 잠들었다. 도착해서 침대에 내리기까지 성공했다. 우주가 자는 동안 친구랑 커피도 마시고 친구 아들이랑 장난감으로 재밌게 놀았다. 거기까지는 참 평화로웠다. 문제는 우주가 일어나서 장난감을 만지며 시작됐다. 장난감을 뺏고 뺏기며 두 아들이 번갈아가면서 울어대는 통에 고민하다가 그냥 집을 떠나기로 했다. 친구 아이도 너무 힘들어하고 우주도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여서 별 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을 하다 문득 다음에는 같이 놀 수 있는 놀이를 준비해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제는 친해져 보자 얘들아...


우주는 사랑하는 이모와 할미와 이모부와 같이 저녁을 먹게 되어 잔뜩 신났다. 룸으로 된 오리백숙 집에서 거하게 몸보신했다. 친구에게 장난감을 뺏겼다는 소식에 동생은 저녁 먹자마자 제부를 끌고 마트에 가서 지하철과 기차 장난감을 사 왔다. 집에서 씻고 이모를 기다렸는데 이모가 양손 가득 장난감을 쥐어주니 기쁨의 비명을 내질렀다. 자기 몸통 만한 기차와 지하철을 양쪽에 품고 잠들기 전까지 만졌다. 그것 때문에 설레서 그런지 열두 시가 다 되어서야 잠들었다.


엄마 집에 오니까 맘이 너무 편하다. 부담스러워서 대전에 오면 일단 엄마 집으로 왔었는데, 앞으로는 시댁에 먼저 가야겠다. 일단 끝판왕을 먼저 깼다는 후련함이 있고 대비 효과로 엄마 집이 엄청 편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렇게 편히 지내다 집으로 돌아가면 되니까 오히려 부담이 적다. 빨래도 여기서 끝내고 갈 수 있다. 제일 좋은 건 내가 시댁에 먼저 들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시부모님 마음에 만족을 드릴 수 있다.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제 자야겠다. 수고했다 2박 3일.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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