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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Oct 03. 2022

22년 10월 2일 흐리고 비

24개월 25일

단양에 왔다. 비가 쏟아지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토독톡톡 빗소리가 예쁘게도 들리는 텐트 속에 누워있다. 우리 가족은 어제 캠핑장에 왔고 오늘 저녁에 동생과 제부가 놀러와서 우주까지 총 다섯 명이 나란히 누워있다. 나 빼고 모두 잠 들었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다. 그래도 하품은 난다.


아침에는 눌은 밥에 된장국을 먹고 점심에는 삼계죽을 만들어 먹었다. 텐트밖은 유럽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며칠 전에 봐둔 메뉴다. 만들기도 간단한 보양식이라니. 닭고기와 파, 양파, 마늘을 숭덩숭덩 썰어 넣고 오래 끓이기만 하면 됐다. 재료에서 우러난 맛이 일품이라 간을 아주 조금만 했는데도 맛있었다. 저녁은 시장에서 마늘순대전골을 포장해왔다. 거기에 동생이 사온 목살까지 배 터지게 먹었다.


우주는 눈 뜨자마자 모래놀이 하러 가겠다고 했다. 모래놀이에 진심이다. 온 몸이 모래 범벅이 되도록 성심성의껏 모래를 가지고 논다. 방방도 타고 싶다고 했는데 10시에 문이 열리길 기다린 다른 어린이들 때문에 엄두도 못 내다가 사람이 빠졌을 때 몇 번 올라가 봤다. 무서워서 뛰지도 못하는데 그래도 재밌나보다. 너무 웃겼다. 어제 방방에서 만난 누나가 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오후 늦게 드디어 만나서 인사를 나눴다.


점심을 먹고 졸음 가득한 우주를 재우기 위해 드라이브 하러 나갔다. 단양은 우리 부부에게 의미있는 곳이다. 사귀기 직전에 떠난 여행을 시작으로 2년에 한 번씩은 꼭 놀러왔다. 두 번째에는 셀프 웨딩 사진을 찍으러 왔고, 세 번째에는 동생네 커플을 데려왔고, 네 번째인 이번 여행에는 우주까지 다섯이 되었다. 여기에 오면 항상 죽령휴게소의 마즙을 먹었다. 우주가 잠든 틈에 휴게소를 향해 차를 몰았다. 도착해보니 휴게소는 새 건물이 되었고 마즙은 옛날의 그 진한 맛을 잃었다. 아쉬웠다.


우주는 죽령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잠에서 깼다. 어제부터 엘리베이터 타고 싶다고 하더니 휴게소에서 제일 먼저 엘리베이터를 발견했다. 단양역 앞에는 짧은 철길과 폐기차가 있는데 우주에게 보여주면 좋아할 것 같아서 역에 들렀다. 본능적으로 역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우주는 일단 역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결국 폐기차를 구경하고 역 안의 엘리베이터를 정복하고 돌아왔다. 못 말리는 엘베 사랑이다.


캠핑장에 돌아오자마자 씻겨놨더니 우주는 그대로 모래놀이에 매진했다. 나는 곁에 앉아 모래에 섞인 돌을 골라냈다. 어제도 한참 골라냈었는데 모래놀이에 방해되는 파쇄석들이 어찌나 신경 쓰이던지 간밤에는 아침에 일어났더니 모래놀이터에 돌이 하나도 없이 정리돼있는 꿈을 꿨다. 우주는 이모와 이모부가 도착하자 반짝이는 눈빛으로 홀린듯 도구를 내려놓고 일어나 이모에게 안겼다. 이모가 의자에서 엉덩이만 떼도 어딜 가려나 하며 주시하더니 씻을 때도 따라가겠다고 난리였다. 이모랑 살라고 해도 좋다고 따라갈 것 같다.


우주를 재우고서 이 밤이 아쉬워 다들 눕지 못하고 전실에 앉아있었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빗소리에 마음을 계속 내려놓았다. 캠핑에서는 삼시세끼 먹을 것과 잠 자는 것에만 집중하면 다른 생각이 온데간데 없다. 일상도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캠핑 한 번 다녀갈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더 가볍게 살게 되면 좋겠다. 화장실 한 번 다녀오고 나도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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