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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Oct 10. 2022

22년 10월 9일 비 내리며 기온이 뚝

25개월 2일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뻑적지근 하다. 돌아보면 일상다운 일상을 지낸 게 언젠지 가물가물 하다. 충분히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작정하고 게으른 하루를 보냈다. 일기도 쓰기가 귀찮지만 이렇게 미루다보면 매일 점점 더 쓰기 싫어질 것 같아서 쓴다. 일기를 남기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던 시간이 몇 달 남지 않았다. 후회하지 말자.


서방구는 자려고 누워서 우주의 목소리가 맴돈다고 했다. 나더러 매일 이렇게 밤마다 맴돌겠다고 그랬는데 사실 나는 우주가 잠든 순간 부터 우주와 보낸 하루를 복기하는 능력이 OFF 된다. 매일 돌보고 있기 때문이려나. 아무튼 우주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 적이 없어서 공감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출장 때문에 주중에는 전혀 듣지 못하다가 종일 듣고 나니까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우주는 정말 하루종일 말한다. 그동안 말 못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자기 전에 옛날 이야기라는 걸 들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된 후부터 옛날 이야기 해달라 하고는 잠시 듣다가 자기가 끼어들어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와 '그런데'를 섞어가며 중간중간 '음... 또!'를 넣어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까 우주가 낮잠 자는 동안 17개월 때 영상을 보게 됐는데 지금 우리 집에 사는 애랑 같은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7개월 사이에 사람이 됐다.


우주는 다른 아기들보다 단기간에 언어발달이 이루어진 편이다. 빠른 아기들은 단어를 돌 지나고 부터 말하기 시작해서 일찍 티가 난다. 하지만 우주는 18개월 까지도 아빠 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래도 눈 맞춤과 상호작용에 문제가 없으니 천천히 기다려보자며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곤 했다. 18개월 말이 되자 좋아하는 물건을 시작으로 이제껏 알고 있던 단어들을 매일 새롭게 대방출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22개월 쯤 가르치지도 않은 조사를 하나 둘 단어 뒤에 끼어 넣고 문장을 만들어 냈다. 아직도 우주와 월령이 앞뒤로 비슷한 다른 친구들은 문장으로 말하지 못한다. 많이 들은 문장을 통으로 읊는 아이는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을 만들어서 하지는 못한다. 우주는 아마도 작문의 원리를 이해한 것 같다. 그리고 말이 너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말하지 못하던 존재가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내가 적응하고 익숙해지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잠든 우주를 보고 있으면 아직도 우주가 말하지 못했던 그때 그 아기 같다. 눈을 뜨자마자 말하기 시작하는 우주의 표정과 입 모양이 매일 새롭고 놀랍다. 아, 맞다. 우주가 말을 할 수 있지! 매일 아침마다, 낮잠에서 자고 깰 때마다 생각한다. 잠꼬대를 말로 할 때 는 진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웃음이 난다. 밥 먹으려고 식탁에 셋이 앉으면 셋이 다 같이 떠든다. 내일은 또 무슨 얘기를 하려나.


내일도 쉬는 날이라 다행이다. 아침에 눈 떴을 때는 몸이 좀 가벼웠으면 좋겠다. 피로는 그 자체로도 너무 피로하다. 이제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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