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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Oct 20. 2022

22년 10월 19일 맑고 파란 하늘

25개월 12일

가벼운 하루였다. 정리해도 금방 개판이 되는 집을 보며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그쳤다. 그럴 수 있지. 해도 티 안 나는 집안일을 부산스럽게 하느라 우주가 혼자 심심해하는 것도, 내가 뭔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으리라 여기던 생각을 그쳤다. 좀 심심해도 된다고 했지. 종일 방치하는 것도 아니니 괜찮다.


아침은 치즈를 넣어 김에 밥을 싸주고 점심에는 토마토 리조또를 만들어 먹었다. 우주는 제 때에 낮잠을 청했고 그 사이에 정리하지 못한 짐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그것 만으로도 약간 속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우주가 깨자마자 이케아로 향했다. 저녁은 거기서 해결하기로 했다.


우주가 많이 컸다. 어린이 카트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카트를 계속 빼다가 또다시 계속 꽂기를 반복하던 우주가 없다. 카트 밀고 다닐 때는 혹여나 누구랑 부딪힐까 내가 붙잡으려고 하면 손도 못 대게 하면서까지 카트를 사수하던 우주도 없다. 잠깐 끌고 다니더니 장난감 코너에서는 카트를 버려두고 갔다. 어른 카트에 타자고 했을 때도 딱히 싫다고 고집부리지 않았다. 전에는 만족할 만큼 카트를 밀고 다녀야만 했는데. 관심이 시들해진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아무튼 그것 말고도 재밌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된 게 아닐까?


밥도 맛있게 먹고 꼭 사야 했던 아이템들을 야무지게 담았다. 동생 신혼집에 쓸 물건도 챙겨서 택배로 부쳤다. 셀프 계산대에서는 늘 우주에게 바코드를 찍을 수 있게 해 주는데, 엄청 행복해한다. 이제 꽤나 잘 찍는다. 음식 재료와 쌀이 없어서 하나로마트에도 다녀왔다. 냉장고가 다시 가득 찼다. 내일부터 다시 요리를 재개해보자.


집에 오자마자 씻기고 까까를 달라기에 간식으로 토마토를 줬다. 정해진 시간까지만 놀기로 하고 양치하고 방에 들어갔다. 열한 시가 조금 넘어서야 잠들었다. 시간을 당겨야 하는데. 천천히 하자. 나도 씻고 밀린 빨래를 정리했다. 모든 것이 너저분하고 많이 부족하지만 찬찬히 해내고 있다. 처음으로 초조하지 않은 날이었다. ‘그래야만 한다.’는 여러 목소리에서 벗어나 내 템포대로 살았던 것 같다. 우주에게 오늘 엄마는 행복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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