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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Oct 21. 2022

22년 10월 20일 미세먼지 많음

25개월 13일

정말 오랜만에 이른 육퇴를 얻어냈다. 애매하게 일찍 깨서 울다가 우유 한 잔 때리고 다시 잠들었다가 또 애매하게 늦잠을 잤다. 마침 언니네 집에 가기로 한 날인데 그집에 가면 졸려도 잠자려고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오늘이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밤잠 당기기를 시도해볼만 한 날이 되었다. 우주는 역시나 신나게 놀고 8시 반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기절했다.


우주가 잠들고 나면 뭘 해야할지 정하기가 늘 너무 어려웠다. 그러면 드라마나 예능을 얼른 먼저 켜곤 했는데 보다보면 그것만 보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우주가 늦게 잠든 탓에 육퇴 후의 시간이 짧아서 갈피를 못 잡는 건가 싶었는데 시간이 좀 더 생긴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우주를 눕히고 옷을 다 벗기고 안방에 들어와 잠시 멍 때리다가 역시나 티빙부터 켰다.


영화를 조금 보다가 혹시 우주가 깰 수도 있으니 그전에 얼른 씻어야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 씻고 나가려고 할 때 쯤 우주는 침을 삼키다 넘어온 코가 괴로웠는지 서럽게 울며 깼다. 잘 자다가 깼으니 얼마나 짜증났을까. 울어도 울어도 계속 넘어오는 코 때문에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힘들어해도 어쩔 수 없이 붙들고 일단 코부터 뺐다. 걸리적 거리던 원흉들이 다 넘어가고 빠지고 나서야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나는 아침에 쌓아두고 간 설거지를 처리하면서 남은 영화를 끝까지 다 봤다.


이제 제법 발음도 깔끔해진 우주는 누나들과 있을 때는 나를 찾지 않고도 같이 잘 놀았다.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주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 특히 또래가 손 잡는 것을 싫어하는데 오늘은 언니네 둘째 하원시키러 같이 갔다가 둘째가 우주의 손을 꼭 잡았을 때 우주도 누나 손을 꼭 잡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순간을 놓칠까봐 얼른 영상과 사진으로 남겼다. 너무 예쁜 찰나였다.


우주는 언니네서 밥도 배 부르도록 잘 먹고 우유도 간식도 푸짐하게 먹고 응가도 했다. 그래서 내 마음도 후련했다. 내일 아침 일곱시에 기상하기만 하면 모든 계획이 성공이다. 우주의 밤잠은 아침 기상시간에 달려있다는 결론은 일년 여의 시간 동안 우주를 관찰하며 얻어냈다. 일곱시에 일어나면 아홉시에 잔다. 늦잠이나 늦은 밤잠은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내일은 꼭 성공해야지. 그러려면 나도 이제 미련없이 얼른 자야한다.


내일은 금요일. 서방구가 오는 날이고 입주 박람회가 열리는 날이다. 새로운 세계를 또 한 번 맛보게 되겠지. 아무것도 몰라서 실감은 안 나지만 재밌을 것 같다. 이제 자자.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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