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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Oct 29. 2022

22년 10월 28일 미세먼지 머선 일

25개월 21일

홀로 맞는 귀중한 새벽시간이다. 서방구가 휴가를 내서 오늘 종일 세 식구가 함께 보냈다. 참 감사한 날이다. 아까 저녁에 마트에서 서방구가 근 한 달간 매주 4일씩 혼자 있어보니 어땠는지 물었다. 도대체 이딴 질문에 뭐라고 답하길 바래서 묻는지 순간 짜증이 났으나 세 식구 즐거운 시간 보내려고 돈도 시간도 많이 썼으니 봐주자 싶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애를 24시간 혼자 보는 일은 단 하루라도 환장할 일이라고 답했다. 집에 와서 겨우 집 정리나하고 설거지나 몇 번 거들면서 감히 육아가 어떤 건지 자기가 잘 안다는 생각으로 내게 물은 것 같아 내내 괘씸했다. 4일이었으니 엄밀히 따지면 3일만 혼자 있던 거라고 콕 집어 말한 것도 열받았다. 바로 조금 전, 샤워하고 나올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첫 줄을 적고 일기를 이어가려고 가만히 하루를 복기하다 문득 서방구의 그 질문은 내가 덜 힘들었을 거라고 확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만큼 하루라도 덜 혼자 있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는 걸 알아달라는 쪽에 더 가까웠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본래 나는 안 좋은 것도 좋게 생각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감사해야 할 이유를 찾으며 사는 편이었는데. 육아하는 나는 매사 억울하고 분이 난다. 누군가 늘 나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의 말씨 하나하나 거슬리고 의도가 불순하리라 무의식이 정의 내리고 있다. 애써 그렇지 않을 거라고, 계속 스스로 다독이며 산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그간 어떤 마음이 나를 짓눌렀는지 조금 정리가 된다. 슬프기도 하고. 아무튼.


우주에게 말투가 생겼다. 물론 내 말투의 복사본이지만. 억양도 따라 한다는 게 너무 웃기다. 듣고 있자면 내가 저렇게 말하는구나 하면서 말할 때 의식하게 된다. 서방구가 같이 있을 때 좋은 건, 우주가 조잘조잘 말할 때 같이 듣고 같이 감탄하는 순간들이다. 그러면 기억이 된다. 혼자서 듣고 지나간 순간은 기억으로 잘 남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내 창 밖에 보이는 모든 것을 하나씩 가리키며 ‘이건 뭐야?’ 하고 묻는 우주의 목소리가 들린다. 언제까지고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라고, 서방구랑 얘기했다.


실내 동물원에 다녀왔는데 입장료가 셋이 합쳐 7만 원 돈이었다. 먹이 세트와 카누 입장권도 샀고 저녁까지 해결하고 왔으니 도합 15만 원이 되는 돈을 한큐에 쓴 것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보통 그 정도의

지출은 며칠 전부터 계획한, 적어도 한 시간 이상 이동하는 그런 스케줄에서나 있을 법 한데.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나와서 그만큼 쓰자니 뭔가 눈탱이 맞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랬다. 딱히 뭘 산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가만 생각해보면 재밌었으니 의미 있었다고 정리했다. 그리고 우주가 정말 좋아했다. 마감 시간이 되어 나왔는데 동물원에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내일은 뭐 해 먹이지? 요즘 우주의 먹태기가 자주 왔다 갔다 해서 나도 의욕을 잃었다. 그래도 애미야, 정신 차려야지? 일단 자고, 내일 또 힘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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