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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Nov 22. 2022

22년 11월 21일 여전히 따뜻

26개월 14일

11월 말인데 낮에는 티셔츠 한 장으로 충분할 만큼 따뜻한 날이 이어진다. 지구가 아파서 그렇겠지? 그럴 때면 진지하게 우리의 생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생각하게 된다. 늦은 오후에 마신 커피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내일은 전주 사는 친구 집에 다녀와야 하는데. 일기만 적고 눈을 감아봐야지.


우주의 마지막 어금니들이 잇몸을 뚫고 있는 요즘, 가장 피곤한 시기에 우주는 결혼식이라는 큰 행사도 치르고 할미 집에 계속 지내야 하는 불편도 감수하고 있다. 오늘 보니 어금니 한 쪽이 드디어 잇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계속 손을 입에 넣더니. 간지러워 그랬나 보다. 잠들기 어려워해서 오늘 낮잠은 차에서 재웠다. 많이 피곤했는지 차에 탄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곯아떨어졌다.


서울에서 있을 강의 때문에 새벽같이 나갔던 엄마가 기차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역에 나가있었다. 엄마랑 우주랑 백화점에서 내일 만날 친구 아기의 옷이랑 우주 티셔츠 몇 장 사고 아는 동생이 운영하는 카페로 갔다. 재즈가 넘치도록 흘러나오는 공간에 앉아 오랜만에 동생이랑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자꾸 밖으로 나가려는 우주를 엄마가 돌봐줬다. 덕분에 공간도, 대화도 생각보다 더 오래 누릴 수 있었다.


갈낙탕과 매운 낙지를 주문해서 저녁으로 먹었다. 엄마는 결혼식 때 얻은 피로를 풀기도 전에 멀리 다녀오느라 피곤했는지 일찍 잠들었다. 아빠도 종일 감사 인사를 돌리고 저녁에는 약속까지 있어서 집에 돌아왔을 때는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늦게 온 할비랑 더 놀고 싶은 우주를 반강제로 데리고 나왔다. 금세 아빠도 잠들었다.


아쉬움을 짜증 섞인 울음으로 풀던 우주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다. 초록색 말과 흰색 말과 파란색 말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우주는 금방 눈빛이 초롱초롱 해진다. 이야기를 가로채 덧붙이기도 한다. 새로운 등장인물도 만들어 준다. 마사지도 같이 해주니 노곤노곤 잠이 오는지 계속 눈을 비볐다. 작은 조명도 꺼지고 이야기도 멈추고 나도 눈을 감으니 우주는 잠을 받아들이기 위한 뒤척임을 시작했다. 한참 걸려서야 잠이 들었다. 긴장해서 얕게 쉬던 숨이 탁 놓아지는 순간이다. 오늘도 수고했다.


어제 챙겨보지 못한 슈룹 12화를 보며 쌓인 빨래를 갰다. 동생 옷이 없는 게 여전히 이상하다. 엄마는 어땠을까? 빨랫감이 줄어서 좋을까. 허전할까. 좋지만 허전할까? 허전하지만 좋을까. 고작 2년 우주를 기르면서도 지나간 우주의 시간을 떠나보내는 기분이 들 때면 서글픈데. 정말로 자식을 집에서 떠나보낸 우리 엄마 아빠의 마음은 어떨까? 그냥 괜히 슬펐다. 며칠 축의금 목록을 정리하느라 정신없는 모습을 보니 사람들의 축하가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허전할 틈 없이 채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좀 졸음이 온다. 잘 수 있겠다. 내일은 겨울이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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