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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Dec 07. 2022

22년 12월 6일 하얗고 예쁜 눈

26개월 29일

너무 좋아서 일기도 잘 안 써지는 밤이다. 경찰 친구가 제천에 있는 경찰수련원 2박을 신청해줘서 우주랑 셋이 여행왔다. 출발하기 전에 친구와 여행 준비물에 대해 얘기하면서 눈이 왔으면 좋겠는데 조금만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튿날이었던 오늘 아침, 커튼을 열어보니 거짓말 처럼 하얗고 예쁜 눈이 소리없이 내리고 있었다.


어제는 청명한 하늘을 만끽하며 제천에 왔다. 푸른 하늘로 시작해서 붉게 물든 노을이 완전히 깜깜해지는 광경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 맑아서 당연히 여행 일정 내내 하늘이 맑을 줄 알고 그 아름다운 장면을 사진에 담지 않았다. 모든 순간은 지나가고 돌아오지 않는다. 한참 내리던 함박눈도 늦은 오후에는 그쳐버렸다. 눈 그치기 전에 우주랑 눈밭에 나가서 눈도 원없이 보고, 만지고, 눈사람도 만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참 밖에서 놀다 온 탓인지 노곤노곤 잠이 든 우주를 두고 친구가 만들어 준 삼계탕을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다 먹고 수다떠는 사이에 푹 자고 일어난 우주도 삼계탕으로 보신했다. 오후 일정은 예쁜 카페로 정했다. 원래는 케이블카를 타러 가기로 했었는데 하필 오늘 휴장한다고 했다. 카페에 앉아 청풍호를 바라보니 케이블카가 휴장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저녁시간이 될 때까지 있었다. 우주는 계단을 오르내리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경하고, 맘에 드는 의자를 찾아다니며 놀았다. 바깥 산책도 했는데 카페에서 기르는 귀여운 고양이들도 있어서 우주가 많이 웃었다.


저녁은 떡갈비로 정했다. 이로써 우리는 오늘 돼지, 닭, 소고기를 모두 섭렵했다. 우주도 떡갈비가 입에 맞았는지 맛있게 잘 먹었다. 숙소에 돌아오는 길이 아주 깜깜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좁은 밤길을 달려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조심조심 심혈을 기울여 운전했다. 돌아와서 씻고 놀다가 우주에게 가벼운 간식을 먹였더니 시원하게 응가했다. 슬슬 잘 분위기를 만들고 방에 들어오니 조잘조잘 떠들다가 잠들었다.


친구는 눈 오는 수련원이 처음이라 분위기를 만끽하러 밖에 다녀왔다. 나도 우주가 잠들고 얼른 일어나서 테라스에 30분 정도 앉아있었다. 건너 건물 옥상에서 나는 기계 소음이 잦아들고 산골에서 들을 수 있는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깜깜한 밤 풍경이 조금 무섭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고요함을 만끽하고 들어왔다. 일상에서도 고요함을 나에게 계속 허락해야겠다. 의도적으로. 분주한 몸과 마음에게 쉼을 주려고 노력해야겠다. 오늘 해보니 30분도 충분하다.


이제 자야겠다. 뜨끈한 방 바닥이 나는 너무 좋은데 우주는 어떨지 모르겠다. 부디 잘 자렴 아가. 우주랑 어디든 떠날 수 있어서 감사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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