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개월 6일
우주 좀 일찍 재우고 금요일 밤을 누려보려고 다 같이 누웠다가 우주보다 먼저 기절했다. 9시 20분쯤 침대에 들어갔으니 아마 10시도 안 되어 잠이 든 것 같다. 3시 좀 넘어서 우유를 외치며 우리 모두를 기상시킨 우주의 코에는 코딱지가 가득 차있었다. 우유 먹는 사이에 환풍기를 돌리고 가습기를 옮기고 물을 채우고 코를 빼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매번 새롭게 괴로워하지만 어쩔 수 없다. 코 막힌 채로 자는 건 더 괴로운 일이니.
덕분에 개운하게 깼다. 또 며칠 밀린 일기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유튜브에 뭐 재밌는 거 없나 기웃거리다가 오케스트라 콘서트 실황을 보게 되었다. 인생의 회전목마로 시작된 영화음악 메들리가 이어폰을 타고 고막을 두드리는데...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49분짜리 영상이라 켤까 말까 고민했는데 지금은 그래서 다행이라며 듣고 있다. 지휘자와 연주자의 얼굴에 몰입이라고 쓰여있는 것 같다. 몰입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몰입하며 살고 있나.
행복한 한 주를 보냈다. 친한 언니가 월요일부터 2박 3일간 두 아이와 함께 우리 집에 머물렀다. 언니의 아이들과 우주가 함께 어울리는 풍경을 눈에 원 없이 담았다. 언젠가는 당연히 우리의 일상이 될 거라 믿었던 장면인데. 언니는 출산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남편을 따라 캐나다로 떠나야 했고 큰 아들이 벌써 올해 10살이 되었다. 복직을 위해 여느 때보다 훨씬 긴 한국 일정을 가지고 온 덕에 온전히 언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언니와 아이들을 맞이하러 기차역에 가는 내내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을 느꼈다. 플랫폼에 서서 기차가 들어오길 기다릴 때는 목이 타기도 했다. 언니가 도대체 내게 어떤 존재이기에 이렇게 마음이 말랑해지는가 생각했다. 2박은 짧다. 너무 아쉬웠다. 다음 달에 이사하고 나면 일주일 지내러 오라고 했다. 언니 돌아가기 전에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다.
우주도 행복한 3일이었다. 늘 혼자 타던 차 뒷좌석에 형, 누나가 함께 앉으니 즐거워했다. 집에서 딱히 같이 노는 것 같진 않았지만 아이들이 우주의 최대 관심사가 되니 나를 찾는 순간이 거의 없었다. 서방구는 애들 왔다 가고 나니까 우주가 또 자란 것 같다고 했다. 저녁마다 따뜻한 물로 채워진 욕조에 들어가 처음으로 물놀이도 했다. 나는 우주가 혼자니까 물에 들어가 있으면 그 앞을 지키고 앉아서 같이 놀이를 해줘야 했는데, 아이들과 있으니 잠시 빠져있어도 괜찮았다. 내게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래서 둘째를 낳는구나 싶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삶이 최고로 좋은 삶이다. 아무리 많은 걸 가져도 사람들과 나누는 정을 대신할 순 없다. 나고 자란 대전에 살 때는 늘 주변에 사람이 많으니 소중한 줄 모르고 살았는데. 정서적으로 외딴곳에 떨어져 사회적 관계도 없이 살아보니 사람이 좋다. 사람들과 보내는 모든 시간이 마음을 녹인다.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게 되어 다행이다.
일기를 매일 쓰기로 약속했던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다음의 나는 무엇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