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문 Jan 18. 2023

23년 1월 18일

28개월 11일

대전이다. 엄마 얼굴 보자마자 온몸이 녹아내렸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아니면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앉았다. 치열한 기차 예매 경쟁 속에서 용케 두 자리를 획득한 서방구와 나는 출장길에 서방구의

손을 빌려 조금 수월하게 대전에 내려올 수 있었다.


짐은 다 잘 챙겨 온 것 같은데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가습기 전원을 켜고 나온 게 생각났다. 물이 없으면 자동으로 꺼지는 시스템 같은 건 없는 모델이다. 관리사무소는 내 부탁을 거절했고 다행히 근처 사는 친척언니가 흔쾌히 나서주었다. 돌아가면 맛있는 거 꼭 사야지. 큰일 날 뻔했다.


엄마는 우리를 픽업해서 바로 한의원에 데려갔다. 원장님은 별일 아니지만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들르라고 하셨다. 원인이 무엇이든 나는 늘 호흡이 문제가 생긴다고. 횡격막이 제대로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지 않고 자꾸 얕은 숨을 쉬게 되어 문제라고 하셨다. 순간순간 의식하며 깊게 쉬어보려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며칠 치료받고 나면 괜찮겠지.


점심으로 삼겹살을 먹었다. 엄마에게 점심으로 삼겹살을 먹는 건 너무 신기한 일인가 보다. 계속 들뜬 표정으로 웃기다고 말했다. 배불리 먹고 집에 돌아와 한숨 푹 잤다. 머리 대자마자 기절 각이었는데 우주는 자꾸 안 잔다고 버텼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먼저 자버렸다. 엄마가 언젠가 데려와 같이 누웠더니 우주도 잠이 들었다. 정말 꿀맛 같은 낮잠이었다.


동생이 일찍 빵을 다 팔고 엄마집으로 왔다. 일어나기 힘들어하던 우주는 이모가 왔다는 소식에 용수철처럼 침대에서 튀어 나갔다. 저녁으로 오리백숙 먹으러 갔는데 엄마는 속이 안 좋다며 집에 누워있겠다고 했다. 엊그제 상갓집에 다녀와서 슬픔을 나눠진 탓일까. 엄마 아픈데 괜히 내려왔나 생각하다가 짐은 되지 말자고 다짐하며 백숙을 열심히 뜯었다.


엄마가 걱정된 아빠는 얼른 식사를 마치고 먼저 집에 들어가고 우리는 우주가 사랑하는 이마트에 갔다. 나는 잔잔바리로 살 것들을 사고 우주는 이모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모랑 헤어지기 싫어하는 우주에게 물놀이하자고 꼬시니까 금세 다 잊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물놀이를 엄청 좋아한다. 깨끗하게 씻겨 놓으니 내 마음이 개운했다.


낮잠을 많이 자서 열두 시는 돼야 잠들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열한 시쯤 잠들었다. 오랜만이라 또다시 낯설어진 엄마집의 밤 분위기에 우주는 집에 가고 싶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여기 오면 그렇게 좋아서 방방 거리면서도 졸릴 때는 집에 가고 싶다고 하는 게 짠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어떻게 해줘야 좀 괜찮을까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잠을 받아들이고 있다.


나도 자야겠다. 졸리다. 엄마가 내일은 좀 괜찮아지려나. 그러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23년 1월 16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