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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Apr 20. 2017

내가 편집디자이너라니

비전공의 직장 생존기

이제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슨 생각으로 편집디자인 분야에 지원한건지 의문이 든다. 몰라서 가능한 배짱이었다. 약간의 체험이라도 해볼 기회가 있었다면, 그냥 조용히 컴퓨터 자격증 따서 사무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6개월 전, 나는 기업의 홍보물을 제작하는 기획사에 편집디자이너로 입사했다. 길고 긴 취준인생의 첫 면접이었고 합격의 기쁨에 겨워 다른 건 돌아보지 않고 입사해버렸다. 잡기와 꼼수 덕분에 가능했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왜냐하면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입사하기 전에는 말이다. 전공도 아닌데 이런 저런 인쇄물을 제작했고, 꽤 잘 한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정말 하고 싶었던 건 글쓰며 돈버는 일이었는데, 내세울 능력도 이력도 없어서 포기했다. 그나마 편집디자인이라는 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거라는 판단이 섰고 그때 부터 이력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면접에 들고간 포트폴리오는 형편없었다. 교회에서 만든 달력과 친구의 사업을 돕는답시고 만든 CI와 패키지 디자인.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합격했다. 나에게 뭔가 있다는 걸 알았나보다 라는 착각은 1달이 채 되지 않아 와르르 무너졌다. 갑자기 우르르 나가버린 경력직들 때문에 회사는 급하게 사람이 필요했고, 마침 실무 테스트에서 내가 쓸만한 결과물을 냈을 뿐이었다. 쓸만한 결과물은 눈치만 좀 있으면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알면 알수록 총체적 난국인 회사였고 여전히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가르쳐줄 경력직은 부족하고 신입들만 옹기종기 모여있는 상황. 우리끼리 아무리 서로의 과제를 보아도 답이 안나오는 것은 일상 다반사고, 겨우 2명의 경력이 나머지 신입들을 모두 관리해주기란 불가능했다. 사수라는 명칭은 무색해진지 오래였다.


덕분에 매번 새 과제를 시작할 때마다 막막함의 바다에서 허우적댄다. 몇번의 산을 넘어도 나아지지 않는 막막함을 느끼며 비로소 깨달았다. 아 나는 재능이 없구나. 하루종일 고민해서 낸 결과물을 보고 1분도 되지 않아 답을 찾아버리는 선임의 능력을 보고 또 깨달았다. 아 나는 재능이 없구나.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료가 사용하는 색들에 감탄을 연발하며 한번 더 깨닫는다. 아 나는 재능이 없구나.


그리고 이제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음을 깨달았다. 계속 갈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이제까지 매번 포기하는 인생을 살았다. 공부를 하다가 집중이 안되면 바로 책을 덮었고, 전공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휴학신청을 했다. 사장이 맘에 안드는 알바는 그만두었고, 워킹 홀리데이로 갔던 캐나다 생활은 지독한 외로움으로 일찍 접었다. 그래서 이번엔 포기말고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 재능없는 이 막막함 속에서 나만의 즐거운 방법으로 디자인을 풀어가고 싶다. 디자인의 '디'자도 모르는 직장의 관리인들이 감놔라 배놔라 하는 바람에 안그래도 어려운 디자인 더 포기하고 싶게 되는 이런 상황에서도 나만의 새로운 방법으로 디자인을 사랑해보고 싶다.


그래서 브런치를 열었다. 소소한 편집디자인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이 직업을 애정하고 싶어서. 작은 발걸음을 떼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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