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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Oct 02. 2017

적어도 나 만큼은.

광명 이케아에 다녀왔다. 멀리까지 큰 맘 먹고 시간내고 돈 들여 가는 건데, 과연 가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걱정됐다. 참 괜한 걱정이었다. 다리가 안아팠다면 거짓말이지만 다섯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가구를 둘러봤다. 내부에서 느낀 감정들은 모아서 꼭 후기를 남기고 싶을 만큼 이케아가 주는 감성은 굉장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것에 대해 서술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배송서비스를 신청하는 과정마저도 이케아 감성이 뿜뿜이었던 그곳에서 나는 매우 들떠있었지만 배송받던 날 집 앞에서 받은 충격은 들떠있던 모습의 기억마저도 부끄럽게 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짐을 옮기던 그 짧은 시간동안 느꼈던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이케아 배송서비스는 날짜를 지정할 수 있다. 다만 시간을 지정할 수는 없어서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무한정 기다려야 한다. 송장 번호나 배송절차에 관한 문자가 오지 않아 배송기사가 누군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1시간 전에 전화를 주긴 한다.

배송을 받기로 한 당일, 아직 신혼집에 살고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오전에는 본가에서, 오후에는 신혼집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집에 혼자 있으려니 여간 심심한게 아니었다. 시간이 더디게 흘러서 잠이라도 자고 싶었지만 바닥이 너무 차가워서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3시간이 흐르고 나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택배 배송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 스스로 관대한 편이라 여기는데, 그날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이케아 배송 후기를 미친듯이 뒤지기도 하고(별로 얻은 건 없었다.) 이케아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도 했다(역시 얻은 건 없었다.).

그렇게 4시간이 되어가려던 찰나에 남자친구 전화로 배송기사님이 전화를 주셨다고 했다. 입구에 도착했는데, 짐이 너무 무거우니 내려와서 같이 좀 날라줄 수 없겠느냐 물었다고 했다. 무한정 기다린 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이건 또 무슨 경우지? 전화를 받고도 한참이 지났는데 아무도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 왠일인가 싶어 1층으로 내려가봤다.

탑차에서 내가 신나게 주문했던 가구를 끙끙대며 내리고 있는 배송기사님을 발견했다. 얼굴은 땀 범벅이었는데, 마스크팩을 떼어낸 직후의 모습과 꼭 같았다. 마음이 멎었다. 열을 내던 마음이 순간 멈췄다. 주문한 것은 침대와 매트리스, 책장과 의자들. 물건은 대부분 남자가 들기에도 버거운 무게였다. 그걸 다 혼자 나르고 계셨다. 입구에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또 엘리베이터 안으로 그리고 집 앞으로.

죄송스러웠다. 마땅히 돈을 내고 받는 서비스인데 그런 감정을 느낄 필요가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못하겠다. 생각이 어딘가에 미치기도 전에 든 감정이었다. 괜히 제가 도와드릴까요? 라는 말같지도 않은 질문을 해보기도 하고 안절부절 기사님 주변을 서성이다가 혼자 오실 줄은 몰랐다며 멋쩍게 한마디 했다. 당연히 혼자 하죠. 인건비가 안맞는다며 돌아온 기사님의 대답이었다. 이케아 배송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기 싫어'라는 말보다 '하고 싶지 않아'라는 그말이 왜 더 안타까운지. 같이 일하던 동료가 이케아 배송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 더 이상 이 일을 못하게 됐다면서. 그래도 회사 계약이라 위에서 하라면 해야죠. 그렇게 말했다.

기사님은 현관문 앞에다 물건을 두고 가겠다고 했다. 나 혼자서는 도무지 집 안으로 들일 수 없을 것 같아서 문 안쪽으로만 넣어주실 수 없겠느냐고 물으니 다음 배송지도 이케아라서 얼른 가봐야한다고 했다. 잠깐이었지만 나도 기사님처럼 끙끙대며 집 안으로 하나씩 물건을 날랐다. 내 힘으로는 물건이 땅에서 1mm도 떨어지지 않았다. 질질 끌어보기도 하고 뒤뚱 뒤뚱 모서리 하나씩 바닥에 대가면서 옮겨보기도 하고. 이케아 택배와 씨름 하는 동안 여러가지 생각이 스쳤다.

적어도 두 명은 올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한 명이 올 줄 몰랐다. 탑차 앞에서 땀을 흘리던 기사님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가학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기 보다 누군가에게 고통을 대신 짊어지게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케아에 지불했던 배송료의 일부가 담당 배송기사님께 돌아가긴 하는 걸까. 둘이 해야만 하는 일을 혼자 하게 해서 이익을 얻는 사람은 누굴까. 이익을 얻는 그 사람도 똑같은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을까. 생각이 계속 가지치기를 하는 동안 마음이 참 갑갑했다.


기술이 아무리 많이 발전했어도 우리는 아직 타인의 능력으로 편의를 얻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케아 배송을 받던 그 날의 나도 그랬다. 기사님의 힘과 기동력을 빌려 내가 실어올 수 없는 물건을 받았다. 택배기사라는 직업이 없었다면 이케아에서 감히 침대나 책꽂이 따위를 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값을 지불했다. 스스로 할 수 없어 남에게 대신 하게 한 만큼의 댓가를 지불했다.

그런데 지불한 댓가는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르겠다. 아니 혹여 그것이 온전히 택배기사님께로 돌아갔을지라도, 기사님의 노동 환경은 사람으로서 감당할 만한 무게 이상이었다. 대체 두 사람이 해도 모자랄 일을 반값 노동력으로 쳐낸 것은 누구의 발상이란 말인가.


사람들이 이케아 어땠냐고 물으면 쇼핑은 재밌었지만 배송을 받고 나니 너무 씁쓸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는 무거운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한 번인데 뭐 어떠냐는 말로 합리화해보기엔 그날의 영상을 잊기 어려울 듯 하다.

모든 사람들이 딱 나만큼만 누리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그게 어려운걸까.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던 초등학교때 선생님의 말씀은 아마 현실은 아닌 것 같다. 일 한 만큼의 댓가를 얻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아마 이번 일 만큼 마음 아픈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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