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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Aug 28. 2017

산다는 건, '사랑'하는 것

어쩌면 행복하다는 것

아마도 첫 직장에서의 패배와 지속되는 백수 생활의 합병증같은게 아닐까 싶다.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된 건.


무엇을 해도 신나지 않았다. TV를 보는 나의 여러가지 반응을 인지했을 때, 내가 참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버렸구나 알게 됐다. TV속에서 사람들이 웃으면 웃음을 쥐어짜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눈물을 비추면 뭘 저런 일로 울어, 생각했다. 감동적인 글귀가 자막으로 지나가면 사람들 홀리려고 별짓을 다하네 그렇게 비꼬았다. 그러고 보니 TV를 볼 때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종종 그런 태도를 보였다. 원래 그렇게 건조하고 차가운 사람이 나였다면 고민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기엔 지난 날의 감성이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가로등 빛을 받고 있는 나뭇잎만 봐도 감동스럽던 날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속에 가시가 잔뜩 박힌게 아닐까.

그런 질문이 마음에 생겼다. 가시가 도대체 왜 생긴 걸까. 묻고 또 물어보니 가시가 특히나 강하게 찌르는 순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삶을 열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 그랬다.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까지 우리집에서는 나만 빼고 다 삶을 충실하게 살아낸다. 엄마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아빠는 가족을 책임진다는 일념으로 벌써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내고 있다. 요즘은 직장인 밴드에 들어가 일렉기타리스트로 못다 이룬 꿈을 이뤄가는 중이다. 동생은 나보다 4살이나 어린데, 제빵사로 5년이라는 경력을 가지고 있다. 아침마다 출근이 힘들어 괴로워하긴 하지만 제빵을 즐거워서 한다. 나름의 철학도 가지고 있다.


11월엔 남편이 될 나의 남자친구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딱 맞은 데다가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한다. 들을 때마다 먼나라 얘기 같다. 잦은 야근과 출장으로 몸이 축나도 '이 일이 아닌가' 라는 질문은 절대 하지 않는다. 다만 더 나은 다음을 위해 버틸 뿐이다.


교회에도 있다. 작년 말에 교회에 부임한 전도사님인데, 성경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누가 어떤 고민을 언제 털어놓아도 성경에 기초해 옳은 길을 제시한다. 자나깨나 성경을 가까이 하고, 다른 사람과 그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TV와 SNS에는 이런 사람들이 넘쳐난다. 꽃집 사장님들, 맛집 사장님들,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책을 낸 작가님들, 일러스트레이터, 패션디자이너 등등. 툭 치면 본인이 몸담은 분야에 대해 하루종일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 십명씩 보인다.


삶을 일구어나갈 자신만의 길을 찾는게 인생의 성공이라고 한다면, 내가 본 그들은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다. 부러웠다. 어떤 것에도 마음을 깊이 두지 못한게 부끄러웠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무언가를 열심히 쫓았던 내가 그리웠다.


질투했던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을 알게 된건 알쓸신잡을 보고 있을 때였다. 마음에 꽂혔던 그 말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시 찾아보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해야할 노릇이라 포기했다. 유시민 작가가 나머지 3명의 잡학박사들에게 했던 말이다. 다들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구나를 느꼈다는 내용의 말이었다.


그 순간 질투로 가득했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

질투나게 했던 그 대상들을 가만히 다시 떠올려보니 그들도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다. 엄마는 사람을 사랑하고, 아빠는 음악을 사랑한다. 동생은 빵을 사랑하고, 남자친구는 프로그래밍을 사랑한다. 전도사님은 말씀을, 꽃집 사장님은 꽃을, 작가는 창작의 대상을 사랑한다. 사랑이 관심을 만들어 내고 열정을 이어나가게 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나는 뭘 사랑하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사랑의 속성을 생각해보니 더더욱 그랬다. 자꾸 궁금하고 만나고 싶고 그래서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라도 가지고 싶고. 원한다면 자신을 내어줄 수도 있는게 사랑이 아닌가. 한때는 꿈이라고 여겼고 지금은 취미가 된 여러 관심사들을 가만히 나열해보았다. 피아노, 재즈, 책읽기, 글쓰기, 편집디자인, 일러스트 그리기, 아이디어 고민하기 등등. 그 중에 단 하나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게 없었다.


당연히 삶이 흔들릴 수 밖에 없구나.

원동력이 없는 삶과 같지 않은가. 모터가 닳아 움직일 수 없는 물건과 같은 삶이 아닌가. 마음을 한 곳에 두어야겠다는 다짐이 피었다. 기웃기웃 하지 말고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는 나의 사랑하는 그것이 있어야겠다 싶었다. 그게 산다는 거구나.


금방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다행히 그리 절망스럽지도 않았다. 무엇을 찾아야 되는지 알았으니 찾기만 하면 되니까. 그래도 얼른 찾고 싶다. 그때가 되면 '나도 진짜 살고 있어!' 자신있게 외칠 수 있을 것 같다.


그걸 행복이라고 말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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