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길

보이지 않는 탯줄의 존재를 인정하기

by 마이문

아기가 나와 떨어져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아기가 자발적으로 놀기를 원하는 동안, 그리고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는 동안. 그 외에는 거의 나와 딱 붙어있다. 분명히 탯줄을 잘라내고 너는 내 뱃속에서 탈출했는데 이게 무슨일이니.


아기를 떼어놓는 방법을 찾던지 떼어 놓지 않고 함께할 방법을 찾던지 둘 중에 하나는 해야한다. 나름의 기준이라면 기준일 수 있는데, 나는 우주를 백일이 될 때까지 품에서 키워보기로 했다. 우주가 세상에 적응 할 수 있도록 약간의 시간을 벌어주고 싶었다. 품이 필요하다고 하면 열어 놓고 언제든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으로.


그렇게 탄생한 일상의 여러가지 공존법들.





밥먹기


밥 때가 되어 집에 누군가가 있으면 쉽다. 안아달라고 하고 편히 밥 먹으면 된다. 그렇지 않을 때는 몸에 붙이고 먹거나 기회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몸에 붙이고 먹는 방법은 두 가지. 잠이 들었다면 아기띠를 해서 둥가둥가 해주며 먹는다. 수유 직후라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무릎에 걸쳐 감싸 안고 같이 밥을 먹는다. 밥먹는 행위에 대해 설명하고 보여줄 수 있어서 또 하나의 놀이가 된다.




잠자기


아기는 밤잠1을 제외하고는 거의 선잠을 잔다. 선잠 잘 때는 등을 붙이면 눈을 번쩍, 소위 등센서가 작동한다. 아직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내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자려면 여러가지 노하우가 필요하다.

등을 비스듬히 하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도록 베개와 쿠션을 잘 정돈하고 개구리 자세를 만들어주어 가슴팍에 올려둔다. 내가 잠들고 나면 아기가 혼자 움직이다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얇은 이불을 덮어 양 귀퉁이를 내 겨드랑이에 쏙 넣는다. 고정이 되어 좋다.




목이 마를 때 텀블러에 물 담기


물을 담으러 갈 수 있는, 가장 잦은 타이밍은 수유 직후. 트림도 시킬 겸 어깨 위에 아기를 착 걸치고 나머지 한 손으로 물을 담는다. 수유 텀 사이에 잘 분배해서 물을 마셔야 한다.




가습기 물 채우기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지금 쓰고 있는 가습기는 물이 부족한 상태가 되면 모터가 꺼지는 게 아니라 계속 돌아간다. 그래서 두개 중 하나의 모터가 얼마 전에 운명했다. 물이 없으면 조절기에 빨간 불이 들어오는데, 왜 하필 그 불은 아기가 선잠자며 품에 안겨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깨는 그 순간에 켜지는 걸까. 한참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아기가 푹 자고 일어나면 얼른 스위치부터 꺼버린다. 물 채우는 건... 보통 가족들이 해준다.




추울 때 창문 닫기


아기에게 좋은 적정 온도를 맞춰주는 일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보일러도 켜지 않은 엄마집 안방은 정남향 답게 겨울에도 낮에는 26도를 찍는다. 아기에게는 너무 더운 온도. 에어컨 바람을 조절하듯 베란다 창문과 방 창문을 적절히 열며 온도를 올렸다가 내렸다가.

그러다가도 가장 난감한 시간이 있는데, 해가 질 무렵이다. 아기는 역시 품에서 선잠을 자고 있고 공기는 점점 차가워져 원치 않는 온도가 되어 어깨가 시리기 시작한다. 이불을 발가락으로 잔뜩 끌어 덮고 아기의 꿈나라 시간이 지나가길 빌며 버틴다.




아기 잘 때 핸드폰 만지기


이것 저것 검색도 하고 카톡도 하고 글도 쓰려면 두 손이 필요하다. 내 손이 없이도 아기가 내 몸에 붙어있을 수 있도록 포지셔닝 해주는 게 관건...!




아이패드 꺼내기


아기가 잘 때 나도 자는게 제일 좋지만 잠이 그렇게 늘

오지도 않는다. 그럴 땐 넷플릭스가 최고. 소리를 켜고 볼 수 없으니 한글 자막은 필수로 켜준다. 자는 아기를 안고 침대에 올라가려면 아이패드가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앉았을 때 발이 닿을 만한 곳에 밀어두고 자리 잡은 후 발가락으로 케이스를 잡아 스윽 가져오면 된다.




이불 덮기


아이패드 가져오듯 발가락과 발을 이용해 당겨온다.




빨래 개키기


이것이야 말로 아기가 내 품에 없는 타이밍이 되야 가능하다.




안경닦기


안경을 쓴 채로 한 손을 이용해 닦아준다.




조명 켜고 끄기


조도를 높였다 낮췄다 편리하게 하도록 바닥에 두고 쓰는 스위치를 침대 바로 옆 트롤리에 걸어 손이 바로 닿게 두었다. 내가 육아하며 머리 쓴 것 중에 가장 뿌듯한 일.




화장실 다녀오기


안그러면 제일 좋은데 아기를 절대 누일 수 없는, 수유 직후에 신호가 올 때가 있다. 그럼 뭐.. 같이 가야지...




코어 운동 및 몸매 교정


릴렉신 호르몬 때문에 뼈 마디가 달랑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운동은 호흡운동뿐. 복직근이 늘어나 코어가 무너진 지금, 근육 회복에 도움이 되는 호흡을 수시로 한다. 제일 좋은 시간은 수유 후 아기를 안고 토닥거리며 걸어다닐 때. 트림도 왠만큼 했고 배부름에 만족하여 잠들 때 쯤 바로 앉지 않고 발레 기본자세로 서서 호흡운동을 해준다.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이틀만에 허리에 무리가 덜 가는 걸 느꼈다. 꾸준히 해서 새로 샀지만 맞지 않는 코듀로이 팬츠를 꼭 입고 말리라.





우주야. 내 품을 맘껏 누리며 세상에 적응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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